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울 미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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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일 서울중구 서울도서관에 신축년 새해를 알리는 대형 걸개그림이 내걸렸다 
2021년 1월 1일 서울중구 서울도서관에 신축년 새해를 알리는 대형 걸개그림이 내걸렸다 

내가 가끔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 중에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라는 것이 있다. 단지 노동자로서 먹고살기가 팍팍하다는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가족 먹여 살리는 일 이외에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역사의 진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노동 현장에서 투쟁해야지, 불평등 해소를 위한 투쟁도 해야지,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야지, 재벌 개혁 투쟁도 해야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치투쟁도 해야지, 이거 뭐 사는 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정작 세상이 바뀌는 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을 때 우리는 지친다. 그리고 아무리 부딪혀도 거악(巨惡)이 꿈쩍도 하지 않으면 ‘뭐가 바뀌긴 하는 거야?’라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이런 회의감은 착각일 확률이 높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잘 안 바뀔 거야”라는 착각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이론 가운데 ‘역사의 종말 환상(End-of-history illusion)’이라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나는 이미 충분히 변화했고 충분히 많은 경험을 했어. 지금이 내 역사의 거의 마지막이야. 그래서 앞으로 나는 별로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앞으로 10년 뒤 자신의 가치관이나 직업, 성격 등이 얼마나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내 경험상 이런 질문을 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앞으로 10년요? 에이. 10년 동안 뭐가 그렇게 크게 바뀌겠어요?”라고 부정적인 답을 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성향이 더 강하다. 예를 들어 내 친구들(50세)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면 십중팔구 “야, 내 나이가 벌써 쉰이야. 10년이 지난다고 바뀌긴 뭐가 바뀌겠어?”라며 정색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의 실험을 따라가 보자. 길버트 교수가 40세 사람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가치관과 성격이 얼마나 변할 것 같은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이들이 답한 변화의 정도는 고작 10%였다. 변해봐야 10% 정도만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50세가 된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난 10년 동안 가치관이나 성격이 얼마나 변했나요?”라고 물어보면 완전히 다른 답이 나온다. 이들 대부분은 “많이 바뀌었지. 세월이 참 무섭더라고. 마흔 살 때에는 내가 진짜 공격적이었는데, 쉰이 되니 많이 차분해졌어”라는 식으로 과거를 회고한다. 50세 응답자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변화를 측정한 수치는 평균 40%였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조금 전 그런 답을 한 50세 응답자에게 “그러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얼마나 변할까요?”라고 물으면 그들의 답이 또 보수적으로 바뀐다. 그들은 “에이, 앞으로는 변할 일 없죠. 내 나이가 벌써 쉰이에요”라며 변화의 가능성을 축소한다. 응답자들이 답한 자신의 미래 변화의 정도는 고작 5%에 머물렀다.

하지만 60세 응답자에게 “지난 10년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변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이 사람들은 “50대가 예상 외로 참 다이내믹하더라고요. 인생관도 많이 바뀌었어요”라고 답한다. 이들이 답한 10년 동안 자신의 변화를 측정한 수치는 30%나 됐다. 어느 나이에서도 사람은 미래의 변화를 현실보다 매우 보수적으로 예측하는 셈이다.

 

우리의 미래는 얼마나 바뀔까?

올해 만50세가 되는 나의 인생을 돌아봐도 그렇다. 나는 40세 때 10년 동안 내 인생이 이렇게 다이내믹하게 변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그 10년 동안 나는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고 『민중의소리』라는 작은 진보 인터넷 매체의 기자가 됐다. 내가『민중의소리』기자가 될 것을 상상한 적이 있냐고? 천만의 말씀! 솔직히 말해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나는『민중의소리』기사를 단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앞으로 10년은 어떨 것 같아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직관적으로 “앞으로 10년이야 뭐 큰 변화 있겠어요?”라고 보수적인 답을 할 것 같다. 실제 나는 지금『민중의소리」에 속한 현실에 너무 만족해서, 평소에도 동네방네 “나는 이 회사에서 정년퇴직 할 거야”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건 정말 모르는 거다. 60세가 됐을 때 나는 “와, 지난 10년이 이렇게 다이내믹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라며 지금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이미 충분히 변한 상태여서 앞으로는 별로 변할 게 없을 거야’라고 착각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종말 환상’이다.

 

하지만 돌이켜보자. 10년 전이었던 2011년, 우리는 10년 안에 촛불혁명이 벌어질 것이라고 감히 상상한 적이 있었는가? 이명박이 득세하고 박근혜의 당선이 유력했던 시절, 세상의 진보를 꿈꿨던 우리조차 혁명이라는 것이 벌어질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을 완수했다. 역사는 그렇게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는 법이다.

2021년 새해가 시작됐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바뀔까? “별 거 있겠어? 늘 그렇듯 똑같겠지. 아무리 투쟁해도 노동자의 삶은 팍팍할 것이고 보수 거악(巨惡)은 꿈쩍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미리 절망하지 말자.

이 이론의 이름이 ‘역사의 종말 환상’인 이유는 역사가 종말을 맞았다는 생각이 환상 또는 착각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한다는 이야기다.

쉼 없이 나아가다보면 역사는 반드시 우리 노동자들 편에 설 것이다. 그게 언제냐고?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이 내일 벌어진다 한들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일이 올해 벌어지지 않으라는 법도 없다.

비관은 진보의 가장 큰 약점이다.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울 미래가 우리 노동자 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으로 辛丑年 새해를 열어나가자. 올 한해 우리 모두 당당한 노동자의 삶을 거침없이 살아나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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