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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노동자와 당당한 노동조합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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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8  10: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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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민주노총 10기 임원선거 후보 포스터 (선거일 11.28~12.04)

1930년대 중반, 미국의 노동운동 역사는 숨 가쁘게 바뀌고 있었다. 1934년 5월 9일 태평양 연안 항구의 부두 노동자 1만 2,000명이 일제히 파업에 돌입했고, 5월 25일에는 8개 해운노조 3만 5,000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했다. 경찰은 파업을 잔인하게 진압했지만 노동자들은 대오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곧이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무려 12만 7,000명이 파업에 참가하며 맞대응했다.

이듬해인 1935년 파업은 더 격렬해졌다. 무려 1만 8,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체포됐고 수 십 명의 노동자가 파업 중에 목숨을 잃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노조가 나라 경제 다 말아 먹는다”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이런 거센 투쟁이 실제로도 미국 경제를 말아먹었을까? 노동자들의 투쟁 덕에 미국은 1935년 단체 교섭권과 파업권을 보장하고, 사용자가 노조 활동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한 전국노동관계법(와그너법)을 제정했다. 1938년에는 최저임금제도 도입됐다.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에 오른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노동자들의 파업할 권리를 점차 인정하기 시작했다.

1936년 GM공장이 있던 플린트에서 노동자 3,000여 명이 파업을 벌이자 회사 측이 고용한 구사대가 난입해 노동자들을 폭행했다. 이때 대통령 루스벨트의 선택은 주 방위군을 파업 현장에 투입해 구사대를 모조리 잡아 가두는 것(노동자가 아니고!)이었다. 루스벨트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미국 경제가 박살이 나기는커녕 눈부신 발전을 시작한 것이다. 1947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 경제 역사상 그냥 번영도 아니고 ‘대(大) 번영’이라고 불렸던 시기가 막을 열었다. 강력한 노조가 토대가 된 미국 역사상 초유의 경제 번영이었다.

 

폴 크루그먼의 대번영기 분석

대번영기에 나타난 미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중산층의 확대였다. 대공황 이전까지 미국 전체 소득 중 상위 1%가 보유한 부(富)의 크기는 무려 25%에 달했다.

당연히 미국의 내수 시장은 엉망진창이었다. 부자는 가진 돈을 다 쓰지 않는다. 축적이 바로 자본의 본령이다. 하지만 대번영기를 거치면서 중산층이 확대되자 당연히 대량소비가 이어졌다. 미국은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린스턴 대학교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대번영기를 이끈 두 가지 동력을 ①미국 정부의 강력한 증세(增稅) 정책과 ②노동조합의 확장 두 가지로 꼽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득세 상한선을 63%까지 끌어올렸다. 1951년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무려 91%까지 치솟았다. 91%라는 어마어마한 최고 소득세율은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 지속됐다.

법인세율도 1955년에는 45%까지 치솟았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77%까지 올랐다. 당시 미국에서 부자들은 돈을 벌면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기업도 이익의 상당액을 세금으로 토해냈다. 엄청난 상속세 탓에 부의 대물림도 쉽지 않았다. 부자는 줄어들고 국부는 국민들에게 골고루 배분됐다. 중산층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크루그먼이 꼽은 미국 대번영의 두 번째 동력은 강력한 노동조합이었다. 대공황 이전까지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10% 언저리에 머물렀다. 그런데 1945년 이 수치는 35%까지 폭증했다. 크루그먼은 “강력한 노조가 노동자들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확대했고, 이는 내수의 진작을 불러일으켜 미국 경제의 훌륭한 성장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미국 경제는 노조 가입률이 높아지면 번영기를 맞지만 노조 가입률이 낮아지면 경제 위기에 처하는 경향이 있다. 1930년 대공황 때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10%였고,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노조 가입률은 11%에 불과했다. 반면 대번영기 때 노조가입률은 40%에 육박했다.

 

한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노동조합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의 10년이 바로 그 시절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책『리셋코리아』에서 이 시기를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기점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사회에 확산됐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높은 임금인상이 지속되었던 덕분이다. 이 시기는 한국 자본주의의 짧은 황금기였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과 눈부신 경제성장이었다. 1987년 제조업 노동자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무려 19%였다. 이듬해 임금인상률도 19.5%나 됐다.

1989년 노동조합 조직률은 20%를 넘어섰고 조합원 숫자는 200만 명을 돌파했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안정적으로 늘어나면서 1986~1988년 한국은 연 10%를 넘는 초고성장을 이어갔다. 1996년까지 10년 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이 무려 8.3%였다.

소득 불평등도 크게 개선됐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0과 1사이의 값을 가지는데 0이면 온 국민이 모두 평등하게 산다는 뜻이고, 1이면 오로지 한 명이 국부를 독점한다는 뜻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이 심한 사회다)는 대부분 0.3을 밑돌았다. 1992년에는 이 수치가 0.256을 나타내며 역사상 최저점을 찍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한국 경제의 황금기였다. 그리고 이 황금기는 198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노동자들의 대투쟁으로 시작됐다.

요약하자면 경제의 성장은 존중받는 노동자와 강력한 노동조합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노동은 당연히 민주노총이라는 반석 위에서 출발한다. 누가 뭐래도 민주노총은 100만 명이 넘는 조합원을 보유한 노동자를 대표하는 대중조직이다. 이런 거대한 조직임에도 위원장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유일한 조직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 조직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노동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한국사회와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의 존재를 충분히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우리가 그 조직에 속한 노동자라는 사실 또한 스스로 가슴 벅차할 만하다.

100만 조합원이 참여하는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의 선거가 지난달 막을 올렸다. 한 달이라는 긴 여정과 다가올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당당한 노동자를 대변하는 당당한 민주노총의 모습을 다시 한 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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