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활동 금지와 공무원의 구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검찰에 구속된 차경완(좌)과 이종욱 조합원
▲ 검찰에 구속된 차경완(좌)과 이종욱 조합원

9월 3일 대법원이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해직자 9명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한 지 7년, 법외노조 취소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된 지 4년 7개월 만의 판결이다. 만시지탄이다.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와 양승태 대법원의 법외노조 합법 판결은 적폐세력의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의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정권이 교체되고 대법원장이 바뀌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법외노조 통보 취소 결정을 미룬 채 사법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김명수 대법원은 판결을 차일피일 끌어왔다. 만일 사법 절차를 엄밀히 준수한다면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파기환송심에서 법외노조 무효가 확정될 때까지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결 하루 만에 전교조 앞으로 “대법원 선고 판결의 취지에 따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2013.10.24.)를 취소하였음”이라고 ‘통보’하였다. 인사치레의 의례적인 유감 표명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달랑 공문 한 장으로 끝이었다. 법외노조를 직권 취소하지 않고 3년 넘게 나 몰라라 외면해왔던, ‘노동존중의 민주정부’의 민낯이라고 할까.

전교조가 법외노조 신세로 풍찬노숙을 한 세월을 따져보니 박근혜 정부 시절 589일이고(법원의 법외노조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효력이 정지된 기간 제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1212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훨씬 더 길어 두 배가 넘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노동존중’의 구호야 영혼 없는 포퓰리즘 ‘립서비스’였다고 치더라도, 명색이 ‘사람 사는 세상’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었다는 것인지,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가 7년 동안 당해왔던 험난한 시련과 눈물겨운 투쟁을 외면해선 안 된다. 전교조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다. 가해자인 정부는 피해자인 전교조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인지상정이 아닐까? 정부는 법외노조 통보로 교단에서 쫓겨난 해직교사 34명의 원직복직 등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해직교사들이 언제 교단으로 돌아가는지, 전교조가 입은 피해가 어떻게 배상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9월 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공무원노조 간부 두 명이 구속됐다. 광주지역본부 이종욱 전 본부장과 차경완 전 사무처장이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구속이란 것 자체가 같은 공무원 동료이자 노조 간부들에겐 충격적인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구속 사유가 분노를 금할 수 없게 한다. 구속 사유란, 올해 2월 공무원노조 광주지역본부 교육수련회에 공무원노조 전 위원장을 초대하여 정치기본권 관련 설명을 듣고 그가 속한 정당에 대한 영상과 책자를 돌렸다는 것이 전부다.

시민으로서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해한 것도 아니고, 공무원으로서 무슨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것도 아니며, 노조 간부로서 그 어떤 부정이나 비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게다가 구속된 두 사람은 현직 공무원 신분이고 노조 간부로서 널리 알려진 공인 신분이다. 이들에게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단 말인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이나 그 영장을 발부한 사법부나 상식이 있는 ‘공무원’인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상식적인 공무원의 판단일 것이다. 대한민국 검사와 판사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 구속간부 석방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광주본부 김민 광주시지부장
▲ 구속간부 석방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광주본부 김민 광주시지부장

대한민국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하였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공무원이 권력의 시녀로 관권부정선거에 동원됐던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란 ‘직무상의 의무’를 말하는 것이지 ‘신분상의 의무’가 아니다. 공적 업무의 수임자인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정치적 입장에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는 선출직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 이것이 입법 취지다. 이런 상식을 구구절절 더 설명해야 할까?

이종욱 전 본부장과 차경완 전 사무처장의 구속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구속은 시대가 21세기지만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낡고 녹슨 법률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구속은 박물관에 보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 아직 청산되지 않아 현재의 공무원을 구속하고 공무원노조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전교조가 ‘노조 아님’을 깨뜨리는 데 7년이 걸렸다. 공무원노조는 동병상련의 심정이라 그 동안 전교조가 겪었던 고난과 시련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교조는 합법성을 투쟁으로 쟁취하였다. 악법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누가 대신 없애주지도 않는다. 악법의 피해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정치기본권이 없는 노동자는 공무원(교사 포함)뿐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공무원의 신분은 아직도 시민(市民, citizen)이 아니라 신민(臣民, subject)이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쟁취! 신민에서 시민으로! 이 전 본부장과 차 전 사무처장의 석방투쟁이 그 첫걸음이다.

공무원노조 광주본부 두 간부의 훈훈한 미소와 따뜻한 목소리가 그립다. 그들이 하루빨리 석방되어 추석 명절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관심과 사랑을 모으고, 구속자 석방을 위한 투쟁에 함께 하는 동지적 의리를 발휘할 때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공무원U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기사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