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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부에 대한 기대와 환상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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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0  11: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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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2.9 민주노총은 임시대대에서 노사정 잠정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시끄럽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에서 잠정 합의안을 반대하자 김명환 위원장이 중집의 의사를 무시하고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을 강행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노총 중집위원의 다수는 중집 회의 직후 잠정 합의안 폐기와 임시대대 소집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임시대대를 소집해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대의원들에게 직접 묻겠다고 한다. 민주노총 규약상 위원장 직권으로 임시대대를 소집할 수야 있다. 하지만 부위원장 7명 중 6명, 산별노조대표자 16명 중 10명(공공, 금속, 건설, 공무원 등 주요 산별 포함), 지역본부장 16명 중 16명 전원의 중집위원들이 연서명으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정파의 구분 없이 중집위원의 절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데도 불구하고 중집의 반대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임시대대를 소집하는 것은 허울뿐인 형식 논리에 지나지 않다. 형식적으로야 민주주의 절차를 내세우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위원장의 권한을 남용하는 전횡이고 독선일 뿐이다.

노사정 잠정 합의안은 폐기해야 마땅하다. 민주노총의 분열을 조장하는 임시대대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 중집위원 반대 성명에 그 이유와 저간의 내막이 낱낱이 밝혀져 있다. 잠정 합의문에는 해고를 막고, 실직자의 생계를 보장하고, 문턱 없는 사회안전망을 만들자는 민주노총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정부가 원하는 그림, 경총이 원하는 내용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합의안을 용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요지다. 또한 중집위원들은 김명환 위원장의 독단적·비민주적 조직 운영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교섭 과정이 중집의 결정을 번번이 어겼고, 위원장이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왜곡된 언론보도를 뿌리고 조직을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 1998년 2월 IMF 위기극복 노사정 공동합의문을 발표하고 손을 맞잡은 노사정 대표단

22년 전의 기억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도부를 잇달아 만나 IMF 극복을 위한 노사정협의회 구성을 제안했다. 1998년 1월 15일 노사정위원회가 공식 출범했고, 2월 6일 노사정 협약(잠정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두고 ‘22년 만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표현이 나온 내력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잠정 합의안은 민주노총이 결사반대했던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 도입을 ‘현찰’로 내주고 노동기본권 확보라는 ‘어음’을 받은 것이라는 현장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2월 9일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대에서 잠정 합의안은 압도적 반대로 부결됐다.(찬성 54명, 반대 184명) 배석범 위원장 직무대행을 포함한 집행부가 총사퇴했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했다. 결국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 도입은 곧바로 입법화되어 ‘현찰’임이 입증되었고, 노동기본권 확보가 부도난 ‘어음’으로 판명 나는데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1999년 민주노총은 정기대대에서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작금의 민주노총 상황이 어쩌면 이다지도 22년 전에 벌어졌던 상황과 똑같을까.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노사정 대화가 이뤄졌고, 잠정 합의안의 내용이 사용자에게는 현찰을 내주고 노동자에게는 어음을 약속한 것이 판박이다. 현장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부 집행부가 임시대대를 밀어붙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민주노총이 1998년 노사정 협약, 2020년 노사정 합의에 참여한 것은 김대중 정부, 문재인 정부 때인데, 두 정부가 ‘민주정부’라는 공통점이 있다. 1998년 민주노총 집행부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근거는 ‘활용론’이었다. 민주정부는 독재정부와 달리 개혁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노사정위원회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민주정부가 중재하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하여 노동자에게 유리한 개혁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기대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말은 무엇인가. 민주정부에 대한 기대는 헛된 환상에 지나지 않았고, 민주노총 내부에 깊은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파견법을 제정한 정부, 그리고 기간제법을 시행한 정부는 어느 정부였나. 군사독재 정권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라는 민주정부였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다를까. 이전 민주정부와 다를 게 없다. 문재인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악했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하지 않았다.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 4년차에도 아직도 여전히 ‘법외노조’ 신세다.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정부를 자처하면서 ‘노동 존중’,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하자 일정하게 기대가 올라가고 환상이 유포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안 할 것 같으면 말이나 꺼내지 말던가….

명심할 것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민주당은 ‘독재 대 민주’의 프레임에서 반독재민주주의 정당이지, 친노동의 진보정당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떠받드는 민주당은 반노동이지 결코 친노동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친재벌-반노동의 입장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은 도긴개긴이다. 탄력근로시간제 확대에서 두 당은 입장이 같고, 단지 확대 기간에서 민주당은 6개월, 통합당은 1년으로 차이가 날 뿐이다. 두 당은 ‘노동 개악’의 입장에서 한통속이고, 단지 차악과 최악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민주당은 차선도 최선도 아니다.

순진한 기대는 허탈한 실망을, 장밋빛 환상은 쓰라린 환멸을 낳을 뿐이다. 민주정부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버려야 한다. 민주노총이 명실상부하게 제1노총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22년 전 창립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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