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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이 남긴 세 가지 경제학적 교훈
양지웅 기자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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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08  19: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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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가 4.15총선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며 뒷목을 잡고 있다.

보수진영의 참패를 불러온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이에 관한 정치적 해석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경제학 관점에서 볼 때 총선이 남긴 몇 가지 인상적인 교훈이 있어서 이번 칼럼에서 이를 되짚어보려고 한다.

 

첫째, 미래통합당의 막말 파문에 관한 것이다.

이 당의 막말 퍼레이드는 선거 패배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들의 막말이 이번 총선만의 일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행동경제학에는 ‘지불분리(Payment decoupling)의 오류’라는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지불의 고통을 가급적 뒤로 미루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예가 신용카드를 이용한 소비다. 지갑에서 바로 돈을 꺼내서 물건을 사면 사람들은 소비에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신용카드를 이용해 돈의 지불 시점을 월말로 미뤄놓으면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해!’ 심리가 발동해 카드를 팍팍 긁어버린다.

사실 이건 명백한 잘못이다. 당장 지불의 고통을 피해도 한 달 뒤에 어차피 청구서는 날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존재여서 지불의 고통을 뒤로 미룰 수만 있다면 일단 그 일을 저지르고 본다.

사실 미래통합당에게는 이 참사를 막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초 이종명, 김순례, 김진태 등이 “광주민주화 운동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다” 등의 헛소리를 했을 때 이들을 단호히 단죄했다면 이런 참패는 모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당대표 후보였던 황교안 씨는 물론, 합리적 보수라 불렸던 오세훈 씨마저도 이 막말을 응징하지 않았다. 결국 그 당은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고 사건을 덮었다.

광주에 대한 모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멍청이가 아닌 한 황교안 씨나 오세훈 씨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 사건을 뭉갰을까? 당대표 선거가 닥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대표 선거에서는 태극기 휘날리며 가스통 굴리는 사람들의 표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민심의 심판이라는 청구서를 뒤로 미루고 눈앞의 달콤함을 선택했다. 당대표 선거는 고작 한 달 뒤였고, 총선은 1년 넘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1년 뒤에 날아오는 청구서? 그건 될 대로 되라지. 나는 당장 가스통의 지지를 얻어야 겠어’라는 지불분리 심리로 이들은 광주 모독에 합류했다. 그 사건을 그렇게 처리하다보니 차명진, 김진태 등이 막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날아온 청구서가 바로 이번 총선의 참패다.

민주진보진영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장의 달콤함을 위해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금 원칙을 어겨도 선거는 4년이나 남았으니까…’라고 안이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4년 뒤로 지불의 고통을 미뤄도 그 청구서는 언젠가 반드시 날아온다.

 

둘째, 프레임의 위력에 관한 것이다.

버클리대학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교수는 저서『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한 바 있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사람의 뇌 구조는 “무언가를 생각하지 마!”라고 강요받을수록 그 ‘무언가’를 생각하게끔 설계돼 있다. 사람은 생각의 틀, 즉 프레임을 통해 사고(思考)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우리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호소했고 우리는 그 호소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아무리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코끼리 생각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코끼리라는 생각의 프레임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이코프는 선거 때 상대방이 씌운 프레임에 빠져 상대의 공격에 해명만 하는 것을 최악의 선거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보수가 종북 프레임을 씌웠을 때 억울한 마음에 “우리는 종북이 아니다”라고 열심히 해명해도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유권자의 뇌에 남는 것은 ‘종북’이라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상대의 프레임이 아니라 우리의 프레임에서 싸워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광역자치단체장들이 불을 붙인 재난기본소득, 혹은 재난긴급생활지원금 프레임은 결과적으로 매우 훌륭한 선거 전략이었다.

미래통합당은 자기 발로 이 프레임 안에 걸어 들어와 허우적거렸다. 황교안 씨는 찬성→반대→찬성을 오가며 오락가락 했고, 유승민 씨는 “황교안 대표가 포퓰리즘에 빠졌다”며 동료를 비난했다. 선거 기술자라는 김종인 씨마저 “대학생 모두에게 1인당 100만 원씩 지급하자”며 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이쯤 되면 이들의 주장이 옳은가, 그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미래통합당은 재난기본소득이라는 프레임에 걸렸고 유권자들의 머릿속에는 이 프레임만 남기 마련이다.

레이코프의 주장처럼 선거는 결국 프레임 싸움이다. 다음 선거에서도 진보는 상대가 씌운 프레임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우리의 프레임에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

 

셋째, 공공의 중요성에 관한 대목이다.

미래통합당 무리들은 시장을 맹신하는 시장주의자들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총선에서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방역과 검역, 의료가 시장이 아닌 공공의 영역이라는 점은 너무 명백해졌다. 한 때 사회주의 정책의 비효율을 상징했던 배급제는 마스크 대란을 극복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변신했다.

수천 만 명이 투표를 했는데 선거로 인한 확진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선거를 위해 2만 명의 추가 인력을 투입했고, 강력한 공공의 관리아래 선거를 완성시켰다.

단언컨대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사회를 발전시킬 힘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에 있다. 보다 안전한 나라, 보다 건강한 나라를 위한 공공의 중요성을 국민들도 분명히 인식했다. 그것이 이번 선거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우리는 다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 10년만 빨리 이런 인식을 가졌다면 우리는 수백 명의 소중한 청춘들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고 그들을 잃었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그건 우리의 책임이다. 공공보다 시장을, 사람 생명보다 기업을, 인간보다 돈을 추구했던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도자로 선출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국민이었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이 안전한 공공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의 원죄를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그 일을 해내는 것만이 우리가 지은 원죄의 100만 분의 1이라도 갚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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