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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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18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 수가 6만 8000명 상으로 늘었다. (5월 4일 현재)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3명 중 1명이 미국인이고, 사망자 4명 중 1명은 미국인이다.

지난달 25일자 <워싱턴포스트>는 예일대학교의 연구를 인용하여 미국의 실제 코로나 사망자는 미국 정부 발표보다 두 배가 많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코로나 사망자 2명 중 1명이 미국인일 거라는 추정이다.

백악관의 태스크포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미국에서 10만 명에서 24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 모델을 내놨다. 한국전쟁에서의 미군 사망자가 3만 3686명,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 전사자가 5만 8220명이었음을 상기하면 끔찍한 참극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브리핑에서 표백제와 같은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하여 코로나 균을 퇴치하는 방안을 언급하는 황당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세계 최고의 의술을 자랑한다는 미국이 이런 참혹한 재난을 겪는 원인은 의료체계의 문제다. 낮은 의료보험 가입률과 허약한 보장성,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의료비용이라는 고질적 문제가 코로나19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다. 미 정부가 긴급지원책을 내놓기 전까지 미국에서 코로나19 검사 비용은 보험이 있으면 약 1500달러(약 186만원), 없으면 3700달러(약 457만원)였다. 응급실을 방문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3만 5000달러(약 4300만원)의 청구서를 받았다는 사례도 언론에 보도됐다.

2018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의 8.5%(약 2750만 명)가 의료보험이 없다. 의료보험이 없으면 의사와 단 몇 분 동안 상담하는 데만 수백 달러(수십만 원)를 내야 한다. 기본 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선 의료보험을 민간회사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환자 본인 부담금이 상당하다. 영국 <가디언>은 시카고대 등의 2018년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인의 44%는 아프거나 부상을 당해도 의사를 찾지 않는다고 전했다. 의료보험이 없거나, 있어도 본인 부담금이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파도 참고 견뎌야 하는 약 1000만 명(2017년 기준)의 불법 이민자는 완전히 의료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미 정부의 코로나19 검사 비용 지원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도 안 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의심 증상이 있어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천문학적인 병원비 부담 때문에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국의 현행 의료체계에서는 코로나19에 노출되어도 수천만 명이 병원도 찾지 못한 채 죽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1~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와 비교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결코 과장이나 빈말이 아니다.

미국의 감염병 방역체계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은 군사주의 때문이다. 국방비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퍼붓고 있어서 국민건강 의료에 쓸 돈이 없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 요구한 2021회계년도 미 연방정부 재량지출 예산은 1조 4850억 달러이다. 이 중 국방비가 9890억 달러로 66%를 차지한다. 이게 정상 국가인가?

2018년 기준 세계은행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국방비는 세계 국방비 순위 2위부터 10위까지 다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1위다. 한 해 800조원이 넘는 국방비를 쓰고 우주군까지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면 뭐 하나.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지켜주지 못하고 속수무책인 주제에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한들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 안전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인간 안보’(human security)에 대한 자각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인간 안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간 안보란 지속적인 기아, 질병, 범죄, 억압 등으로부터의 안전이며, 가정이나 직장 등 사람들의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인간 안보란 안보의 개념이 ‘국가’가 아니라 ‘국민’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곧 국민의 안전과 보호가 국가 안보라는 국가주의 담론에 희생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겪고 있는 코로나19 참상의 교훈은 무엇인가?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은 군사적 위협보다 결코 덜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한정된 국가 예산을 어디에 우선 분배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첨단 무기가 부족하고 국방비가 모자라서 6만 8000명이 속절없이 쓰러진 게 아니잖은가?

‘위대한 미국’은 없다.

2016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트럼프 후보가 내세웠던 구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였고, 그의 2020년 대선 슬로건이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이다. 하지만 미국의 지도력은 코로나19 사태로 초라한 몰골을 드러내고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글로벌 위기 시대에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제 앞가림도 못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신세계가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미국의 이상’을 말한다. 미국에 가면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리라는 꿈을 좇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열려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바라보고 미국 땅으로 향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24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자, 급기야 미국은 ‘허망한 죽음의 땅’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드러났다. 서울 한복판에서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흔드는 기괴한 무리도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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