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재난과 정치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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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CD 국가들의 공공병상 점유율
▲ OECD 국가들의 공공병상 점유율

코로나19로 난국에 처한 대구에 국가지정 음압병상이 고작 10개밖에 없다. 대구만 그런 게 아니다. 국가지정 격리병실이 경남에 4개, 경북에 3개, 전라남도에 4개뿐이다. 음압병실 설치비용이 국가지정 병상의 경우 3억원이고 유지비용도 많이 들어 돈벌이가 안 되는 음압병실은 오로지 공공병원에만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음압병상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이송되다가 사망한 환자도 발생하였다. 현재 전국에 음압 병상은 총 1027개이고, 이 중 국가지정 음압 병상은 198개로 19%에 불과하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에 이어 올해 코로나19까지 신종 전염병이 5~6년마다 닥치고 있다. 신종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공공의료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공공의료시설이 충분히 갖춰지면 감염병이 유행할 때 지역 거점병원을 비워 신속하게 격리 대상자들을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대비 가장 많은 병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0%가 민간병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공공병상이 평균 73%이고 심지어 민간의료 천국이라는 미국도 23.5%인데, 한국은 고작 10%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민낯을 보여준다. 코로나19 사태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공공의료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 대안이다. 지금 그나마 지방의료원과 국립병원을 중심으로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이 정확히 실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공공의료의 확대·강화는 커녕 공공의료 파괴의 흑 역사를 기억한다. 7년 전 2013년 2월 26일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 강제 폐업 계획을 발표했다.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을 신고했고 경남도의회는 진주의료원 해산조례를 통과시킴으로써 서부경남 공공의료기관을 기어코 없애버리고 말았다.

1일 현재 경남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9명으로 이미 경남 음압격리병실 수용 가능 인원을 초과했다. 확진 환자는 마산의료원과 진주와 창원의 경상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등 공공병원에서 격리치료 중이다. 경남도는 환자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마산의료원 전체를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지정하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특수 목적 병원인 국립마산병원을 활용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마산병원에 입원중인 환자를 멀리 목포까지 보내기도 했다.

진주, 사천, 남해 등 서부경남에서 발생한 환자들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부경남엔 경상대병원에만 4개의 격리병실이 있어 나머지 감염병 환자들은 마산의료원 등 먼 지역으로 이송할 수밖에 없다. 진주의료원은 2009년 신종플루 당시 ‘경상남도 치료 거점 병원’으로서 하루 평균 300명, 4개월간 1만2천명의 의심환자를 진료했고 498명의 확진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다. 만일 7년 전 진주의료원이 강제 폐업되지 않았더라면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서 지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터다.

▲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지난 2013년에 폐원시킨 진주의료원
▲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지난 2013년에 폐원시킨 진주의료원

2013년 진주의료원의 폐업 조치가 강행되자 국가인권위는 ‘경남도가 환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했다’라고 지적했고, 국회는 국정조사를 통해 조속히 개원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홍준표 지사는 이를 무시하고 강제 폐업을 단행했다. 박근혜 정부가 한통속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7년이 지난 지금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홍 전 지사는 오는 4·15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양산을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박근혜 새누리당의 후신 미래통합당 역시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다.

일말의 책임과 역할은커녕 ‘재난을 어떻게 하면 정쟁으로 비화시킬까?’에만 골몰하는 정치세력을 코로나19와 함께 단호히 퇴치시켜야 마땅하다. 미래통합당은 입만 열면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인 입국 금지를 안 한 탓’이라고 부르짖는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중국인 입국 금지가 유일한 대책’이라고 강변하고, 중국과의 연관성을 부각하기 위해 공식 명칭 대신 굳이 ‘우한 폐렴’, ‘우한 코로나’라는 용어를 고집한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대구를 ‘봉쇄’하고 ‘대구 코로나’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재난을 악용하여 다가오는 4·15 총선에서 반사이익을 노리겠다는 속셈이 빤히 읽힌다.

재난이 발생하면 정치의 역할이 한층 부각된다. 만일 재난에 대한 대처를 시민 개개인에게 맡겨 놓는다면 나라의 존립 이유가 의심받을 테고, 정치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번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다시 말해 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바람직한지, 그 우선순위에 따라 정책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다. 그 일을 잘할 것 같은 정당과 후보를 주권자가 선택하는 것이 선거다.

코로나19의 대량 확산으로 공공 의료시설과 의료인력 부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공공의료의 확충을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예산을 투입해 긴급 방역시스템을 강화하고 공공의료체계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다. 중국은 우한에 열흘 만에 1,000병상 공공병원을 세운 데 이어 벌써 2만3천 병상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라고 못할 게 무언가?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중국보다 훨씬 더 잘하고도 남을 일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정치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정치의 역할을 내팽개친 채 코로나19 사태의 당파적 유불리만 따지면서 정쟁을 일삼는 것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적폐 정치다. 신종 바이러스 퇴치와 함께 구태 정치세력의 청산이 시급하다. 재난을 수습하고 예방하기 위해 자원과 예산을 획기적으로 배분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4·15 총선에서 어떤 정치를 선택할지,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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