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들불처럼 번지는 코로나 위세 앞에서 세계는 전방위적으로 대책을 세우고 대응하기에 급급하다. 그런 가운데, 동양인 입국을 막기 위해 빗장을 걸어 잠그거나 조롱 하는 인종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나는 차별을 하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차별 안하기가 더 쉽지 않다. 헌데, 대놓고 국제적 차별이 행해지는 세태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이상 ‘지구촌’ 모습이 아니라 인종차별 바이러스를 내뿜는 악다구니 모습이다.
차별은 거창한 범위에서만 논의되는 건 아니다. 누구나 차별 논란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선량한 차별’을 자신도 모르게 행하는 우리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 주는 책이 있다.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을 가하고 있는 국가와 사회, 개인에게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우리 주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차별들에 놀라고 누구 하나 가해자로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발견에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저자는 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차별을 하고 받게 되는지, 차별이 어떤 양상으로 관계 속에 스며드는지에 대하여 여러 사례와 경험을 통해 알려준다. 독자는 그 불편한 진실의 책임을 주변에 물으며 외면하고 등을 돌리려 해도 결국 검이 자신을 향해 돌아옴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다. 하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그 역시 무의식적으로 차별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그의 자아비판은 프롤로그에 ‘결정장애’라는 말로 시작된다. “‘결정장애’.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너무 많이 고민하는 나의 부족함을 꼬집는 간명한 말 같았다.”(p.5) 저자는 ‘혐오표현’에 대한 토론회가 있던 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자는 말을 하던 와중에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곧 참석자 중 한 명으로부터 왜 그 말을 썼는지 질문을 받고 부끄러워한다. 이유는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감’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p.6)는 것이다. 인권을 가르치는 교수가 무의식 중 사용하는 단어가 차별을 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내뱉었을 차별단어들을 상상하게 된다.
1부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준다. 평범해서, 다수라서, 일상적이어서, 고정관념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 군상들을 나열한다. 현호 사례를 들어보자. 몽골 국적의 엄마와 함께 7세부터 한국에서 살아 온 현호가 친구 싸움을 말리다가 경찰서에 가게 되고, 한국 체류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순식간에 강제출국을 당한다. 10년을 한국에 살면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현호에게 주어지지 않는 체류자격과 올림픽 출전을 위해 외국인에게 기꺼이 내주는 국적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라며 환대하는 태도와 ‘그들’이라며 배척하는 태도 사이에는 극명한 감정적 온도 차이가 있다."(p.50)
저자는 이기적이지 않은 선량한 차별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어떤 방식으로 자행하는지를 설명하며,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p.38)임을 강조한다.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p.79)라며 일상의 차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2부는 사례를 통해서 차별이 생성되는 배경과 원인을 해부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원증 목줄 색깔을 달리 하는 것과 명절 선물을 구분하는 것이 “차별이 공정하다는 생각”(p.103)에서 오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능력주의 관점’이 많은 불평등을 정당하게 보여준다는 설명도 있다. “홈리스는 일하기 싫어한다. 동남아시아인은 게으르다. 장애인은 무능력하다. 비만인은 자기관리를 안한다. 등 능력에 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만들어지면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p.105) 홈리스, 동남아시아인, 장애, 비만 자체를 능력으로 보는 것이 온당치 않은 차별임을 알려준다.
책은 무의식중에 저지를 수 있는 차별 행태들을 여러 영역에서 보여준다. 국가, 인종, 성별의 범주 뿐 아니라 개인적 차원인 가족관계, 직업, 학력, 외모까지 깊숙이 침투한 일상 속의 차별을 나열한다. 일상속의 차별, 평등을 가장한 무감각한 차별들을 자행해 온 나 자신을 발가벗기는 듯했다. 안전을 이유로 ‘예멘 난민 입국’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은 일, 평등한 언어로 착각하고 입에 담고 다닌 ‘다문화’, ‘그들’을 전제로 한 ‘우리’라는 표현을 쓴 나의 이력이 스쳐 지나갔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나의 ‘중립’이 주류 집단을 정상으로 인정하고 다른 집단을 일탈로 규정한 불합리한 기준이었다는 사실 또한 이를 방증했다.
"차별의 이야기는 단지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로 표상되는 특정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삶을 구성하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p.210)
저자가 들려주는 차별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 나의 이야기이다. 독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차별을 받는 자’에서 ‘차별을 하는 자’로, 혹은 반대로 교차하는 자신과 조우하게 된다. 그 마주한 지점에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선을 갖추어야 한다. 타인에게 무심코 던지는 시선을, 사용하는 언어를, 행동을 동등하게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을 이 책에서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지점들이 모이고 확장되어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실타래 역할을 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