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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실종의 4·15 총선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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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4  10: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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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당 광주 전남지역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들이 '1% 특권층 불공정 재산 몰수, 서민에게 재분배'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2월 6일 의원총회를 열어 비례대표 의원인 조훈현 의원을 제명했다. 미래한국당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조 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한 채 당을 옮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행 선거법은 비례대표 의원이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제명이 되면 의원직이 유지된다. 자유한국당이 이걸 악용하여 현역 의원을 스스로 제명한 것이다.

과연 자유한국당 답다고 해야 할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한선교 의원을 위장정당의 대표로 꿔주기 파견하더니 급기야 비례의원의 차출을 위하여 현직 의원을 스스로 제명하는 작태까지 서슴지 않는다. ‘셀프 제명’의 저질 코미디다. 자유한국당이 앞으로 총선 불출마 의원들을 추가로 미래한국당으로 보낼 방침이라고 하니, 의원 꿔주기와 ‘셀프 제명’을 통한 당적 위장전입이 계속될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유해한 것이 자유한국당이 퍼뜨리는 ‘정치 혐오’ 바이러스다. 2월 5일 열린 미래한국당 창당대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저들이 페어플레이하지 않겠다고 한 이상, 우리도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당한 궤변이다. 위장정당의 ‘바지 대표’ 한선교 의원은 “우리당은 공약이 따로 없다. 영입하고 공천하는 인물이 공약”이라고 말했다. 공약이 없는 정당이라니, 황당무계하다. 당을 만들어 유권자에게 표를 얻겠다면서 공약이 없다고 공언하는 것은 스스로 가짜정당임을 실토하는 것이다. ‘정치 혐오’ 바이러스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이번 4‧15 총선의 특징은 한마디로 공약이 실종된 선거라는 점이다. 정책공약은 온데간데없고 합종연횡 이합집산의 정치공학만 난무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총선 공약이야 굳이 길게 언급할 것도 없다. ‘공수처 폐지’와 ‘검찰총장 임기를 현행 2년에서 대통령의 임기 5년보다 길게 6년으로 연장’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무소불위의 ‘검찰 왕국’을 만들자는 것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다른 공약은 안 봐도 불 보듯 빤하다.

집권여당은 어떨까? 더불어민주당이 지금까지 발표한 21대 총선 공약을 살펴보자. ‘제21대 총선 공약 NO.1’이 ‘전국 무료 와이파이시대를 열겠습니다!’이다. ‘제21대 총선 공약 NO.2’가 ‘벤처 4대 강국 실현’이고, ‘제21대 총선 핵심공약 제3호’가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 조성! 주택 10만호 공급!’이다. 이게 집권여당의 공약이 맞나, 눈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민생이 무너진 판국에 이 무슨 한가한 공약이란 말인가?

더불어민주당의 4‧15 총선 공약은 절박한 민생의 요구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부의 세습과 가난의 대물림을 낳는 ‘수저계급’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땜질 처방으로는 어림없다. 그런데 ‘전국 무료 와이파이시대’ 실현이 집권여당의 ‘제21대 총선 공약 NO.1’이라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남상호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가계소득 및 자산 분포의 특징’(2015.04.06)에서 국내 가계 단위의 순자산 지니계수(0.6014)가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0.4259)보다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자산의 경우 상위 10%가 우리나라 국민 전체 자산의 43.7%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위 40%는 고작 5.9%를 보유하는 데 그쳤다. 이는 상위 10%가 전체의 29.1%, 하위 40%가 13.4%를 각각 차지하는 소득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큰 격차다.

특히 자산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보다 불평등 심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인생의 출발점부터 차이가 벌어진다는 데 있다. 자산 소유의 불평등은 인생의 출발선에서부터 불평등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모의 자산 정도에 따라 태생적으로 ‘수저’가 달라지는 것이다. 지난해 벌어진 ‘조국 사태’는 ‘수저계급’ 한국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다.

불평등 완화를 위한 복지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빈익빈부익부의 불평등이 완화되기는커녕,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당장 민생 위기가 심각하므로 복지 확대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자산의 분배가 극도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자산의 재분배 없는 복지 확대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복지 확대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으며, 자산의 불평등 해소가 근본 해법이다.

한국 사회 구조 개혁의 관문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이다. 21대 총선은 4년마다 열리는 의례적인 국회의원선거가 아니라 촛불항쟁 이후 치러지는 첫 총선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대중항쟁으로 표출된 민심을 반영하는 정책이 각 당의 정책공약으로 제출되어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지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과정으로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책공약이 실종된 채 정치공학만 어지러운 선거는 정치 혐오를 부추길 따름이다. 더구나 촛불항쟁 이후 새 시대의 관문을 열어가야 할 4‧15 총선이 정치 혐오로 오염되는 것은 시대의 요구에 역행하는 심각한 퇴행이다. 공약은 뒷전이고 오로지 ‘비례대표 의석 배분 자격 3% 득표’ 경쟁에 매몰되는 현상 역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정책이 실종된 선거, 유권자의 선택이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

차별, 불공정, 불평등, 가난의 대물림을 끝내려면 자산재분배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이제 소득의 재분배를 넘어 자산의 재분배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치열하게 논의되어야 할 때다. 1948년 농민에게 농지를 분배하는 농지개혁으로 대한민국이 지주-소작관계에 기초한 봉건제를 일소하고 새로운 발전의 동력을 마련한 것처럼 이제는 자산재분배로 새 시대의 문을 열어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촛불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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