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이유 : 가용성 휴리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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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언론의 보도 행태를규탄하는 노동자들이 조선일보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보수언론의 보도 행태를규탄하는 노동자들이 조선일보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인간은 선택을 할 때 그다지 정교한 계산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인간은 대부분의 선택을 ‘대충 찍어서’ 한다.

비슷해 보이는 물건인데도 가격이 다를 때, 우리는 제품과 가격을 꼼꼼히 살핀 뒤 사지 않는다. “싼 게 비지떡이야”라는 속담만 믿고 비싼 걸 덜컥 집는다. 아니면 “싼 게 장땡이지”라는 소신으로 싼 걸 덜컥 집거나!

찍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동물이다. 생각을 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는 언제나 최소한의 에너지만 써서 효율을 높이고자 한다.

세상만사를 판단할 때 늘 뇌를 풀가동하면 피곤해서 살아갈 수가 없다. 복잡한 생각을 접고 대충 찍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의 뇌가 살아남는 방식일 수도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찍는 기술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부른다. 생각 과정을 최소화해 찍어버리는 뇌의 습관을 뜻한다. 그리고 휴리스틱 중 대표적인 것이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라는 것이다.

가용성 휴리스틱 : 자주 접한 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가용성 휴리스틱이란 내가 자주 본 것, 내 가까이에 있어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경험한 것 등을 기준으로 찍어버리는 행동을 뜻한다. 그게 머리에 가장 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언제 화재보험에 많이 가입할까? 사고 위험을 계산한 뒤 내는 보험금과 받는 보상금을 비교해서 이익이 될 때? 천만의 말씀. 인간은 그렇게 정교한 동물이 아니다. 화재보험 가입 결심이 서는 때는 바로 삼촌 집에서 불이 났을 때, 혹은 고등학교 동창 집에서 불이 났을 때이다. 통계를 기반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접촉하기 쉬운 지인이 화재를 겪었을 때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항공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들이받는 충격적인 장면을 접한 미국 국민들은 그때부터 항공기 이용을 극도로 피하고 그 넒은 미국 대륙을 운전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건 휴리스틱이 유발한 심각한 잘못이다. 항공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보다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통계를 무시하고 기꺼이 자동차 운전을 선택한다. 직접 목격한 초대형 항공기 사고가 뇌에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 김용균 노동자의 살아 생전 모습
▲ 김용균 노동자의 살아 생전 모습

한국 사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자 한국 사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위험에 부쩍 관심을 쏟았다. 당연한 일이고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 옳은 일이 왜 하필이면 지난해 12월에야 시작됐을까?

한국은 매년 17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는 나라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이 김용균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이었다. 그런데도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지난해에야 관심이 쏟아진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사고가 언론에 크게 보도됐기 때문이다. 가용성 휴리스틱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은 최근에 접한 것, 자주 접한 것, 인상 깊게 접한 것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

휴리스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언론

짐작하다시피 가용성 휴리스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언론이다. 대부분 국민들이 언론을 통해 뉴스를 접하기 때문이다. 100여 곳의 언론이 주구장창 경제위기론을 들먹이면, 사람의 머리에는 “경제가 진짜 문제이긴 한가보다”라는 공포가 생긴다. 반면 언론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과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줄기차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위험의 외주화야말로 당장 멈춰야 한다”는 진보적 신념을 갖는다.

그래서 독일 포르츠하임 대학교 경제학과 하노 베크(Hanno Beck) 교수는 “사람들은 특정 죽음의 위험성을 평가할 때, 언론에 자주 보도된 것일수록 발생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고 단언한다. 경제 위기로 죽을 위험이 높으냐, 위험의 외주화로 죽을 위험이 높으냐를 판단할 때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언론 보도의 양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절대로 기레기들의 헛소리에 넘어가지 않아”라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을 읽는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그럴 수 있는데, 대중들은 그렇지 않다. 많이 보고 많이 접한 것의 발생 가능성을 높게 생각하는 가용성 휴리스틱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그만큼 언론 개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조중동의 위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얕잡아볼 때가 아니다. 과거에는 조중동 셋이 난장을 피웠다면, 지금은 이름도 모르는 언론사까지 포함해서 100여 개 언론이 동시에 난장을 부린다. 이 지형을 바꾸지 않는다면 수많은 민중들이 가용성 휴리스틱에 의해 속아 넘어가는 일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말인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긴 하다. 노동자로서 싸워야 할 일도 산더미 같은데 언론개혁까지 해야 하다니! 뭐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은지, 가끔 성질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가야 할 길이라면 웃으면서 가자. 언론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토닥이며 함께 투쟁의 길에서 만나자. 우리가 하지 않으면 그 일은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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