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종족주의'라는 일베류 역사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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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출판되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 책이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한국은 거짓말쟁이의 나라다. 일제시기 일본군위안부를 비롯한 군사동원과 노동력동원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 것이며, 강제노동이나 성노예도 없었으며 민족차별도 없었다. 모두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한일의 연구자들이 진실을 왜곡한 것이며 이들의 거짓말에 한국 사회가 휘둘렸는데, 그 이유는 한국사회가 샤머니즘적인 반일종족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궤변이다.

2000년대 초 일본에서 이른바 ‘자유주의사관론자’라 자칭하는 극우지식인들이 기존의 역사교과서를 ‘자학사학’에 빠졌다고 공격하면서 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강제노동(이하 역사부정으로 통칭한다)을 부정하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무덤 속에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 역사부정론이 한국에서 다시 나온 것이다. 다만 선수가 한국의 ‘뉴라이트’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 치의 발전도 없는 진부한 레퍼토리를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면서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것인 양 의기양양한 것을 보면 무척 당혹스럽다. 그런데다 고약스런 것은 자신들의 무지한 역사인식과 무능한 역사해석, 악의에 찬 신념과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공부는 돌아보지 않고 ‘반일종족주의’라는 하나의 허깨비를 만들어놓고 거기다 온갖 삿대질을 하고 있다.

이는 해방 이후 줄기차게 일본정부와 일본기업을 상대로 피해배상을 요구하며 싸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자 연구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왜냐하면 단순한 역사해석상의 차이로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세계관의 차이에 따른 역사해석 문제라면 최소한 자신들이 전면 부정하는 과거의 주장과 그 논거들에 대해 자신들의 이해를 말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일 역사학계에서 성취한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 이해의 토대 위에서 전면 비판이든 전면 부정이든 시작해야 한다. 그게 연구의 기본 태도이자 윤리이다.

그러나 이 역사부정론자들의 글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한국사회의 변화를 오로지 ‘반일 내셔널리즘’ 하나로만 이해하는 한심한 수준의 이해력을 버전만 달리해서 한국의 역사부정론자들은 말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그저 ‘기승전-반일종족주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무지와 해석의 무능함을 덮는 방법으로 이데올로기적 선동만 반복한다.

 
 

그런데 필자로 하여금 더 큰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반일종족주의>의 필자 중 한 명인 이우연의 행태 때문이다. 지난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제네바본부 회의실에서 믿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었다.

국제역사논전연구소라는 일본 극우 역사단체가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낙성대연구소의 이우연 연구위원이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국제역사논전연구소는 도쿄재판과 연합국총사령부(GHQ)의 일본 정책을 부정하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전면에 내세운 극우 역사단체로 국제사회를 상대로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이 연구소는 “일본의 입장에서 세계를 향해 역사논전을 전개해 일본을 지키겠다”고 하여 실상은 일본제국이 저지른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일본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린 내 나는 것을 비단보자기로 덮은 신판 황국사관’의 국제무대용 행동기관이다.

그가 발언한 내용의 핵심은 이렇다. 첫째, 2018년 10월 30일 한국대법원이 일본 신일철주금에서 1939년부터 일본에 간 한국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한 것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과 다름없다. 둘째, 강제연행은 없었고 징용도 법에 따른 것이었다. 셋째, 노예노동도 아니었다. 넷째, 임금을 못 받았다는 주장은 거짓이고 민족차별도 없었다. 그리고 한국 사법부와 행정부가 전시 노무동원을 강제연행과 노예노동으로 오해한 것은 ‘반일종족주의’적인 악감정 탓이다.

본인이 제네바 회의에서 주장한 내용을 ‘제3의 길’이라는 사이트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았으니 ‘설마, 그럴리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내용이라 필자가 왜곡해서 해석할 것도 없다. 기왕의 일본 극우들이 주장한 바와 거의 똑 같은 이 내용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오해와 무지, 왜곡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다는 이 억측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스스로 실증주의 역사를 한다고 자랑하는 학자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과감하게 펼칠 때는 최소한의 근거라도 제시해야 한다. 행정부 수장이 사법부의 판단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이 발상은 과거 이승만, 박정희 독재체제나 일본의 비민주적인 사회질서에서나 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원인 중 하나도 권력을 동원해 사법부의 결정에 개입하려 했기 때문임을 그는 모르는가. 그걸 모른다면 한국사회의 민주적인 기본질서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실상 이런 주장의 출처는 지금 일본에서 혐한 내용을 담은 책을 만들어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는 전 주한 일본대사 무토 마사토시에서 나왔다. 그는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다룬 글에서 문재인 정부를 종복좌파 정부 또는 주사파 정부로 규정하고 대법원도 대통령의 지시로 배상판결을 내렸다고 <문예춘추>에서 주장한 바 있다. 이념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문재인 정부를 혐오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글은 대부분 사실과 관계없는 억측과 비난, 악담으로 가득 차 있다. 문재인 정부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일본 극우파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연구자가 그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강제동원과 강제노동, 민족차별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언과 공식 자료들은 차고 넘친다. 역사부정론자들은 이런 자료와 증언을 모두 무시한다. 심지어 일본사법부와 국제노동기구가 인정한 사실까지 부정하고 있다. 도대체 <반일종족주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식민 지배가 폭력과 차별을 토대로 만들어진 사회라는 기초적인 인식조차 없는 이들에게 이제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과하다. 왜곡과 무지, 혐오발언으로 가득 찬 역사부정론자들의 ‘일베류 역사 선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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