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지혜로운 '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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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는 쉽게 전염된다. 나와 남, 우리와 저들의 구분은 인간의 원초적(혹은 학습된) 본능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늘 증오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증오는 보통 우리와 가까운(유사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최근 몇 달 사이 급격히 냉각된 한일 관계를 바라보며 증오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물론 종족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민족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오래 전부터 증오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 이후 우리 사회는 일본에 대한 ‘복수’를 집단적으로 꿈꾸는 듯하다.

시작은 불매운동이었다. 크고 작은 논쟁도 있지만, 국민 10명 중 6명이 지금도 일본제품 불매에 동참하고 있다. 와중에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서울의 한 구청장이 시내 한복판에 ‘노(NO)재팬’ 가로기를 걸었다가 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관에서 나서서 오버하지 말라는 거다. ‘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NO재팬’이 아니라 ‘NO아베’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단 뜻이다.

일본 우익의 실체를 알리는 각종 보도, 서적 출간도 이어지고 있다. 요컨대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동군(도쿠가와 이에야스)에 패한 서군이 다시 초슈(야마구치현), 사츠마(가고시마현) 지역으로 복귀했고, 이들의 후손이 1868년 도쿠가와 막부를 쓰러뜨린 메이지 유신의 주인공이 됐다는 거다. 유신을 이끌었던 요시다 쇼인, 다카스키 신사쿠는 야마구치에 기반을 둔 아베에게 있어 일종의 ‘정신적 스승’이다.

뿐만 아니라 1894년 이른바 ‘7월 23일 전쟁’(청일전쟁에 앞서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던 사건)을 지휘했던 오시마 요시마사가 아베의 고조부이고,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가 아베의 외조부다.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수대에 걸쳐 ‘한국 정벌’을 이끌어 온 세력이 바로 일본 우익이란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계속해서 같은 주장과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성공 비결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극일’을 선언했다.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종료했고 일본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를 이끌고 왜곡된 경제 체질을 개선한다는 데 많은 국민들이 호응하고 있다. 수익을 소부장 기업에 투자하는 이른바 필승코리아 펀드에는 한 달 만에 무려 640억 원이 모이기도 했다.

극일은 곧 자강이다.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패권주의로 변질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대통령의 주장은 장밋빛 비전속에 커다란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우석훈의 주장<촌놈들의 제국주의>대로 남북경협이란 곧 남한 자본이 북한을 내부 식민지화 시키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평화경제 실현보다 한중일 갈등, 심지어 동북아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리가 할 일은 자강과 함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적을 분명히 하되 동지를 늘려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는 약간의 신념이 필요하다.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듯 우리와 닮은 저들도 그와 같을 것이란 소박한 믿음 말이다. 인간은 증오만큼이나 사랑이 넘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양국 국민이 다시 신뢰를 가지고 소통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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