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청춘들 "내 나이가 어때서…노래하기 딱 좋은 나이지∼"

현장탐방 -서울시청지부 노래패 '바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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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 공무원노조가 서울 대학로에서 주최한 ‘ILO핵심협약 비준 촉구대회’ 무대에는 유행가요 ‘아모르파티’를 개사한 ‘ILO 파티’ 노래 공연이 펼쳐졌다.

형형 색깔의 야구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채 무대에 올라 스웩넘치는 댄스로 집회의 흥을 돋우는 공연에 참가자들도 일어나 노래와 춤을 따라하며 열렬히 호응했다.

이 공연을 펼친 팀은 다름 아닌 서울시청지부 노래패 ‘바위처럼’이다. 신나는 리듬에 맞춰 발랄한 몸짓과 활기찬 퍼포먼스로 무대를 장악한 이들을 보면서 2030 조합원일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의 연령은 ‘무려’ 50대이다.

지난 26일 ‘바위처럼’이 노래 연습을 하는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의 지부사무실을 찾았다. 패원들은 매월 두 차례 퇴근 후 지부에 모여 노래 연습을 한다. 이들은 내년에 노래패 출범 1년을 기념해 콘서트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 지부 운영위원을 맡게 됐는데 운영위에 67년생 양띠 동갑내기 친구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또래끼리 뭉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우리도 민중가요를 한번 불러보자는 취지에서 노래패를 시작하게 됐죠.” ‘바위처럼’의 김윤정 패장의 말이다. 김 패장은 그동안 평범한 조합원이었을 뿐 노조활동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다. 다른 패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부분 민중가요를 거의 알지 못한 상황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 공무원노조 서울시청지부 노래패 '바위처럼'이 지부 사무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 공무원노조 서울시청지부 노래패 '바위처럼'이 지부 사무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이용범 패원은 “작년에 지부 출범식 무대가 첫 무대였는데 당시에 가사도 제대로 못 외우고 공연을 했죠. 노래도 당연히 잘 못 했고…. 그런데 이번에 ILO비준 촉구대회 공연 영상을 가족들한테 보여줬는데 정말 대단하다며 놀라더군요”라고 말했다.

노일권 패원은 “나이 들어 친구 사귀기가 어려운데 노조 활동으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굉장한 음치거든요, 조합원들이 저 같은 사람도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누구나 같이 할 수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맘이 맞고’ 민중가요를 좋아하게 된 양띠 친구들이 각종 행사에서 가발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고 노래패에 가입을 원하는 조합원들이 생겨나면서 불과 1년 만에 숫자도 12명으로 늘고 올해부터는 서울시청지부의 공식 노래패로 거듭났다.

지부 노래패가 된 후에는 민중가요의 이해와 기능 향상을 위해 유명한 전문 강사 ‘우리나라’의 가수 이광석 씨를 초빙하여 레슨을 받고 있다.

▲ 지난해 공무원노조 11.9 연가투쟁 집회에서 '바위처럼'이 노래패연합과 함께 노래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지난해 공무원노조 11.9 연가투쟁 집회에서 '바위처럼'이 노래패연합과 함께 노래 공연을 펼치고 있다.
▲ 바위처럼이 지난 6월 1일 대학로에서 개최된 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대회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 바위처럼이 지난 6월 1일 대학로에서 개최된 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대회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이날 연습에서도 이 강사는 각자의 장단점을 짚어주면서 본인의 노래 스타일에 맞는 노래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 강사는 “지금까지 어떤 지도도 받지 않고 이 정도로 노래를 부른다는 건 대단한 열정”이라며 “다들 워낙 긍정적이고 호흡이 잘 맞는다. 평소에 서로 북돋아주고 화목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공무원노조 집회 공연도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 이런 우애와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동료들이 노래 연습하는 영상을 자신의 폰으로 촬영하던 박성수 패원은 “원래 음치, 박치 이지만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며 “좋은 친구들 때문에 저 자신도 자신감이 커지는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바위처럼’에서 가장 연장자로 노래패 고문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청지부 홍춘기 사무국장은 “처음 노래패 공연을 봤을 땐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연습을 하면서 점점 실력이 느는 게 느껴지고 함께 부르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는 게 보인다”며 “이제는 노래패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래패 활동을 통해 노래 실력뿐 아니라 ‘노동’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김미영 패원은 “민중가요를 배우면서 가사를 보면 노동과 민중, 탄압과 저항의 역사를 자연스레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노래가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인식이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공무원노조 서울시청지부 노래패 '바위처럼'
▲ 공무원노조 서울시청지부 노래패 '바위처럼'

공무원노조 사회공공성강화위원장과 서울시청지부 암사지회장을 맡고 있는 오정환 패원도 5·18 광주민중항쟁과 제주 4·3항쟁 답사 등을 패원들과 함께 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 친구들이 노래패를 통해 노조활동을 하면서 근현대사를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자신이 배웠던 것과 다른 역사를 발견하고, 또 재작년 1,700만 촛불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 것도 노래패 활동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김윤정 패장은 “바위처럼은 공무원노조의 다른 노래패들처럼 노래를 잘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단합이나 결속력,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여느 노래패 못지않다”며 “이 친구들과 퇴직할 때까지 변함없이 함께 하면서 조합원들의 눈높이에 맞는 활동으로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8-90년대 노동운동의 전성기에는 전국의 노동현장마다 문화패 하나쯤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나마 있던 문화패도 사라지거나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50대가 넘어서 ‘노래를 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그것도 12명이나 되는 대규모로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하기 딱 좋은 나이지’라고 흥얼거리는 그들의 발랄한 열정과 소박한 꿈을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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