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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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병환 용산구지부장이 제로페이 강제동원 중단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노병환 용산구지부장이 제로페이 강제동원 중단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또 왔어요? 우리는 제로페이 안해요”

 소상공인업소를 찾은 공무원에게 업주들이 귀찮은 듯 쏘아붙였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우리가 영업사원인가?” 내쫓기듯 업소를 나오며 공무원들이 푸념처럼 내뱉는 말이다.‘제로페이’는 지난 6·13지방선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상공인을 위한다며 내건 공약으로 물품을 구매할 때 현금이나 카드 대신 모바일을 사용하는 결제방식이다. 소비자의 휴대폰으로 가맹점에 있는 QR코드를 읽어 결제금액을 입력하면 소비자의 계좌에서 업주의 계좌로 이체되어 결제된다.

 제로페이를 이용하려면 수익자인 소상공인은 제로페이에 가맹해야 하고 소비자는 휴대폰에 QR결제 어플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소비자에게 제로페이 사용동기를 부여하고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맹점이 시장에 널리 퍼져 있어야 충분조건이 성립된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제로페이정책’ 시행에 들어갔다. 제로페이 정책집행자는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소상공인에게는 결제수수료 제로화, 소비자에게는 소득공제혜택을 당근으로 주었다. 하지만 수수료가 없거나 매우 적다고 수익자인 소상공인이 제로페이에 무조건 가맹하지 않는다. 소득공제율을 높게 적용해준다고 사용자 또한 제로페이로 결제하지 않는다.

 서울시는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실적이 저조하여 효율성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높이지자 그동안 상투적으로 해왔던 매우 익숙한 추진방식을 들고 나왔다. 그것은 바로 서울시가 자치구에 교부하는 특별조정교부금을 앞세워 제로페이 가맹실적에 따라 교부금을 차등지급하는 줄 세우기를 한 것이다. 즉, 치킨게임이 시작되었다.

 서울시 일부 자치구는 제로페이 실적을 위해 직원들에게 1인당 몇 건씩 강제할당을 서슴지 않았다. 현장의 공무원들은 정책의 수단으로 전락한 자신에 대해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업무외 일을 감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성과에 급급하면 자율성보다 강제성의 유혹에 빠져든다. 또한 당연히 업무추진에 무리가 따른다. 이런 곳에서 행정의 민주성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가깝게 ‘승용차요일제’ 등에서 강제 추진방식의 폐해를 경험해왔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이라고 했다. 언제까지 우리의 행정은 권위주의 시대에 머무를 것인가? 고도성장이 낳은 속도전의 폐해를 인식하고 이제는 행정의 민주성을 찾을 때가 되었다. 행정의 민주성은 구성원에게 소속감과 창의성을 부여한다. 인간의 존엄이 최대한 보장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행정이 뭔가 깊이 고민해 보자. 정권의 공무원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는 길이 어떤 길인가?

 조기성과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충분한 준비와 시간을 두고 이해당사자를 설득해 자발적으로 사업에 동참하는 행정의 매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제로페이 사용자들이 소상공인을 위한다는 당위성보다 편리함을 찾아 이용하는 결제시스템으로 자리 잡아 정책의 입안자나 집행자가 소상공인의 삶에 보탬이 되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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