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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공치사와 새치기를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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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7  13: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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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고성 속초 일대 산불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소방차량이 운집해있다.

강원도에서 대형 산불이 난 이튿날, ‘황교안 지킴이 황사모’라는 밴드의 대표 김형남 씨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다행히 황교안 대표가 아침 일찍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산불 현장 점검도 하고 이재민 위로도 하고 산불 지도를 한 덕분에 속초·고성은 아침에 주불은 진화가 되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산불 지도를 해서 산불이 꺼졌단다. 황 대표가 뭘 했다고 산불이 꺼졌단 말인가? 설마 산불이 “야, 황교안 나타났다. 재수 없으니 우리가 꺼져주자” 뭐 이랬다는 이야기인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대꾸도 안 하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경제학은 이런 자화자찬을 절대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시민사회가 황교안 무리의 이런 헛소리를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구성의 오류와 새치기

경제학에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는 개념이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했는데, 사회 전체로 보면 그게 큰 해악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언급한 ‘절약의 역설’이 이런 구성의 오류에 해당한다. 경기가 안 좋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껴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저축을 한다. 이는 그 개인이 할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을 한다고 생각을 해보라. 안 그래도 경기가 좋지 않은 판에 사람들이 지갑을 닫아버리면 소비가 줄어 경기가 더 나빠진다. 케인스는 이를 ‘절약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의 한 원인이 바로 이 절약의 역설이다.

다른 예가 있다. 공연장에서 나 하나 더 잘 보겠다고 벌떡 일어서면 어떻게 될까? 벌떡 일어서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뒷사람의 시야가 가려지고, 뒷사람도 공연을 보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 그 뒷사람의 뒷사람도 또 일어서야 한다. 이것 역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 전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구성의 오류에 해당한다.

경제학에서 구성의 오류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예가 새치기다. 새치기를 한 사람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을 했을지 몰라도, 그 피해는 뒤에 줄을 선 모든 이들에게 돌아간다.

너도나도 새치기를 시작하면 줄은 개판이 된다. 그래서 경제학은 구성의 오류를 막기 위해 개인의 새치기를 대중의 힘으로 제어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뒤에서 “당신 지금 뭐하는 거요? 당장 나와요!”라고 질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동해에서 한 소방대원이 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새치기를 관용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새치기 좀 했다고 대놓고 얼굴 붉히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보다도 훨씬 더 새치기에 냉정할 것 같은 서양에서조차 막상 새치기를 당하면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새치기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밀그램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이들에게 뉴욕 시내의 129개 줄에 새치기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들은 정해진 규칙대로 앞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들은 끼어들면서 “실례합니다, 저 여기에 좀 들어가겠습니다”라며 점잖게 한 마디를 던졌다.

이처럼 점잖게 새치기를 할 경우 몇 %나 제지를 받았을까? 놀랍게도 고작 10%만이 뒷사람들에게 항의를 받았다. 셋째와 넷째 사이에 끼어들었다면 매우 과감한 새치기였는데도 뉴욕 시민 중 90%는 그 반칙을 용인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실험은 아르바이트 두 명을 동시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한 명은 미리 줄을 서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바로 그 앞자리에 새치기를 감행했다. 당연히 새치기를 당한 아르바이트 실험자는 미리 약속한 대로 전혀 항의를 하지 않았다.

직접 새치기를 당한 사람이 항의하지 않았을 때 뉴욕 시민들의 몇 %가 새치기를 제지했을까? 이번에는 항의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5%까지 떨어졌다.

실험 결과의 요지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 사회는 예상 외로 새치기에 매우 관대하다. 둘째, 한 사람이 침묵하면 다른 사람도 따라서 침묵한다. 침묵은 전염병처럼 번져 새치기가 더 용인되는 문화가 형성된다.

“황교안 대표가 산불을 진화했다”는 주장은 정치인의 전형적인 새치기다. 산불을 진화한 공로는 누구보다도 현장에서 몸을 던져 진화작업에 나선 소방공무원과 산불진화대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공당의 대표가 거기에 슬쩍 숟가락을 얹는다.

정치인들이 자화자찬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욕구가 무엇인지 잘 안다. 그건 그들의 이해관계에 잘 맞는 행위다. 하지만 이런 새치기를 묵과하면 사회 전체의 질서가 엉망이 된다. 구성의 오류가 나타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황교안의 새치기가 먹혀서 국회의원 300명이 산불이 나자마자 숟가락 얹기 위해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달려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그 도로는 소방차가 질주해야 하는 도로란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자화자찬, 숟가락 얹기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새치기에 매우 관대하다. 정치인들의 자화자찬도 “원래 정치인이 그렇지 뭐”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런 관용이 전염병처럼 번지면 정작 용감하게 불을 끈 소방공무원들의 공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공연장에서 한 명이 벌떡 일어나는 거? 그거 용인하면 공연장이 엉망진창이 되는 거다.

황교안 무리의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공치사에 대해 시민사회가 “당신 지금 뭐하는 거요? 소방공무원들이 받아야 할 칭송을 가로채지 마시오!”라고 강력히 응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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