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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노동자에게 정치기본권을...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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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7  13: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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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기본권 보장 촉구하는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조합원들

노동3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단체행동권이 없으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다. 온전한 노동3권과 정치기본권이 없으면 형식만 노동조합이지 내용은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공무원노조)은 반쪽짜리 노동조합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MBC 노조는 투표율 95.9%, 찬성률 93.2%로 파업을 진행하여 고영주 이사장, 김장겸 사장을 쫓아내고 해직기자 최승호를 사장으로 세웠다. 핵심 조합원들을 비제작 부서로 전보시키고 가혹하게 징계하며 공정방송을 망가뜨렸지만 MBC 노조는 의연히 살아있었다. KBS 노조도 141일 간의 파업을 통해 고대영 사장, 이인호 이사장을 쫓아내고 공정방송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방송사 노조에게 단체행동권을 포함해 온전한 노동3권과 정치기본권이 보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처럼 노동3권과 정치기본권이 제약되고 설립신고필증 만 있는 노동조합이었더라면 엄두도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공무원보다도 한층 엄격하게 정치적 중립성(공정성)이 요구되는 언론인에게는 정당 가입과 정치자금 후원 등 정치기본권이 허용돼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정치활동을 금지 당하고 있다. 이게 타당한가? 역사를 살펴보면 1993년 이전까지의 정당법에서는 언론인 역시 공무원처럼 정당 가입 등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1993년 12월에 정당법이 개정되면서 언론인의 정치활동이 전면 허용되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치기본권을 금지 당하고 있는 유일한 집단은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아직도 민주사회의 시민이 아니라 최후의 신민() 신세로 남아있는 셈이다.

더구나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는 형평성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터무니없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회적 영향력도, 정치자금의 액수도 훨씬 큰 사학재단의 이사장은 정치후원금과 정당가입을 허용하면서 그 재단 소속 평교사의 소액 후원금은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이게 과연 형평성에 맞는가?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중립성이 요구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의 종교 활동은 허용된다. 그런데 정치적 중립성에 있어서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전부 금지하고 있다. 종교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교사와 공무원의 종교 활동은 사적인 영역에서 허용되는데 왜 정치적 활동은 사적인 영역에서도 금지되어야 하는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특정 정당의 이해에 치우치지 말고 중립적이며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중립성은 공공 업무를 담당할 때 요구되는 것이지, 사적영역에서 당원이 되거나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종의 정치탄압이다. 사적 영역에서 당원이 되거나 정치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에 해당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박탈과 정치활동 금지로 악용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문제의 심각성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오히려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공무원에게 정치적 침묵을 강요한 것이 국정농단의 폐해를 낳은 요인의 하나였다. 이명박-박근혜의 국정농단은 공무원들이 상부의 부당한 명령이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무원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정치기본권, 곧 국가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더라면 국가권력의 사유화나 국정농단 사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소극적 권리를 넘어 적극적 권리이다. 정치기본권은 공무원의 근무조건 개선과 처우 향상을 넘어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하는 핵심 열쇠다. 모든 사회적 요구는 정치를 통해 해결된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집단은 자신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데서 구조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공무원 인력 확충을 위한 예산 확보, 해직자복직 특별법 제정, 성과퇴출제 등 정부 정책 비판,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 쟁취, 공무원노조특별법 폐기 등 전부 다 정당의 정책 변경이 필요하고 법률 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치활동을 통하지 않고 단지 노동조합 활동만으로는 해결 방법이 없다.

   
 

올해가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이다. 오는 6월 스위스에서 100주년 총회가 열리며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이 예정돼 있다. 문 대통령은 ILO 핵심 협약의 비준을 공언해 왔다. ILO 핵심협약이란, 조약 제29호(강제노동에 관한 조약), 조약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조약), 조약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조약), 조약 제105호(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조약) 등이다. 이 4가지 핵심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이름도 낯선 팔라우, 통가, 투발루 등 6개국뿐이다.

한국 정부의 ILO 가입은 김영삼 정부가 OECD에 가입하기 위한 의무조항의 하나였으며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할 때 부속조항의 하나였다. 지난 2월 ILO 협약·권고 적용에 관한 전문가위원회는 교사·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일체 금지하는 한국의 국가공무원법 65조는 정치적 견해에 기초를 둔 차별을 금지하는 ILO 111호 협약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국제사회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국내 상황에 대해 의아해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 한국 정부가 더 이상 비준을 미룰 이유가 없다.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누가 대신해 줄 리 만무하다. 정치기본권 금지의 부당함을 제기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 ILO 100주년 총회에 맞춰 국제연대사업도 활발히 벌여야 한다. 100만 공무원노동자의 대표노조라 할 수 있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앞장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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