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최일선에서 주민 보호와 복구…노동의 대가는 온전하지 못해

강원 산불, 재난 현장 곳곳에 공무원노동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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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부터 5일까지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등 강원도 일대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정부와 관계 부처의 신속한 대응으로 큰 인재(人災)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밤새 속초로 달려가는 소방차의 행렬과 치솟는 불길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소방공무원들의 모습은 국민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소방공무원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 쏟아지며 이들을 조속히 국가직으로 전환해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요구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강원 산불 현장에는 소방공무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산림청과 지자체의 산불진화대와 군인, 경찰, 그리고 수많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함께 진화작업에 나섰으며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이 있었다. 특히 산불이 발생했을 때부터 주민 대피와 안전사고 방지 등 재난 현장의 보이지 않는 곳곳에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숨은 노고가 있다. 이들은 산불진화 이후에도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잔불 진화작업과 피해 지역을 복구하고 이재민 지원과 구호 대책 마련을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주민 대피부터 잔불 진화, 이재민 보호와 복구… 공무원노동자 손 안 닿는 곳 없다

4월 4일 오후 강원 고성과 강릉 옥계마을에서 각기 시작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속초시와 동해시 등으로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자칫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속초시는 산불 발생 후 30여 분만에 속초시 공무원 전원을 비상소집했으며 13개 주민대피소를 지정해 주민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다.

 “당시 신속하게 재난 문자를 보냈고 창천 마을처럼 고립된 지역에는 직접 나가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인명 피해가 적었던 것은 그렇게 초동 대응이 빨랐기 때문이다.” 속초시 안전총괄과에서 방재복구를 담당하는 공무원노조 속초시지부 전재순 사무국장의 말이다. 그는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느라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족들이 걱정이 돼 전화를 했는데 통신 두절로 연락이 안 되더라. 계속 순찰을 돌면서 집 방향을 쳐다보기만 했다.” 산불이 난 지역과 인접해 있던 전 사무국장의 아파트는 다행히 불길을 피해갔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날 밤 3차례나 대피소를 옮겨 다녀야 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이기에 큰 재난이 발생해도 가족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 지난 4월 4일부터 5일까지 강원도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후, 속초시 공무원들이 잔불 정리를 하기 위해 현장에 모여 있다.
▲ 지난 4월 4일부터 5일까지 강원도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후, 속초시 공무원들이 잔불 정리를 하기 위해 현장에 모여 있다.

교통과에 근무하는 속초시지부 양선재 지부장은 그날 밤 주요 지역의 차량을 통제하고 속초 의료원의 환자들을 일반 병원으로 후송했다. 그는 이번 산불로 집을 잃은 조합원이 몇 있다며 “공무원이라 시민의 안전은 지키면서도 자기 집은 못 지키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좀 서글프기도 했다”고 말했다.

밤새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산불이 시내로 번지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속초시 공무원들은 날이 밝자 군인 장병들과 함께 산불 피해지역에 투입돼 잔불 정리와 뒷불 감시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소방공무원들이 큰 불을 잡고 나면 남은 잔불 정리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한다. 20리터짜리 등짐펌프에 물을 담아 올라가서 낙엽들을 갈퀴로 긁고 그 속에 남아 있는 불씨를 제거하는 작업이다. 워낙 대형 화재라 여직원들까지 포함해 속초시 전 직원이 산에 올라가 군장병과 함께 뒷불을 정리했다고 한다.

▲ 동해시 공무원들이 20리터짜리 등짐 펌프를 지고 잔불 정리를 하는 모습
▲ 동해시 공무원들이 20리터짜리 등짐 펌프를 지고 잔불 정리를 하는 모습
▲ 젊은 여직원들도 현장에서 지급된 점퍼만을 착용한 채 잔불 정리를 했다.
▲ 젊은 여직원들도 현장에서 지급된 점퍼만을 착용한 채 잔불 정리를 했다.

양 지부장은 잔불 정리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에게는 안전모와 점퍼만 지급이 된다며 “잔불 정리를 할 때 신었던 신발은 이후 신을 수가 없게 된다. 또 이번 대형 산불처럼 큰 재난이 발생해도 지자체에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아 공무원들이 그냥 맨몸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불길과 잿더미, 유해가스가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안전복은커녕 마스크조차 없이 재난 지역을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산불로 국가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속초시와 고성군, 강릉시, 동해시, 인제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잔불정리 작업을 마친 시군 공무원들은 타버린 나무를 베어내고 끌어내는 일부터 시작해 피해지역  철거, 방역, 상수도 복원 등 해당 부서별로 긴급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또한 산림뿐 아니라 주택, 공장, 수산 등 분야별로 신속한 피해조사 실시와 이재민 보호, 각종 구호대책 마련과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재민 임시거주지에도 24시간 파견돼 이재민 보호와 지원 업무를 맡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답지하고 있는 구호 물품을 분류하고 배분하는 일도 모두 이들의 몫이다.
  
재난 최일선에서 고생하지만 노동대가 제대로 못 받아…주민 화풀이 대상될 때도

재난 발생 지역 공무원들은 비상근무체제 속에서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며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노동에 대한 처우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번 강원 산불지역 공무원 노동자들도 늘어난 업무로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고 있지만 그 대가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크게 지적받고 있는 것은 시간외근무수당이다. 1일 4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민간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단가는 큰 불만 요인이다.

공무원노조 동해시지부 김명하 지부장은 “주말에 온종일 돌아다니면서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사무실 들어와 정리하느라 야근까지 해도 시간외수당은 4시간밖에 못 받는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보상에서도 차별 받으니 여기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시간외수당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지만 재난근무 관련 특별휴가 실시를 시에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속초지 공무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구호 물품을 분류하고 배분하는 일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 속초지 공무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구호 물품을 분류하고 배분하는 일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김 지부장은 공무원이 겪는 감정노동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현장에 피해 조사하러 나갈 때 하는 말이 ‘이제 욕 먹으러 나간다’”라며 “피해를 당하신 분들의 불만의 화살이 일선에 있는 공무원들에게 다 돌아간다. 매일 항의전화가 걸려온다. 특히 젊은 여성 직원들에게 하대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양 지부장 역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의 고통을 헤아리기에 피해조사 시에 가능하면 부정적인 답변을 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하지만 일선 공무원이 법을 넘어서 할 수 없는 경우까지 민원인이 요구할 때는 참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동해시 안전총괄담당인 공무원노조 채시병 부위원장은 “재난이 났을 때 ‘제일 고생하고 제일 욕 많이 먹고 제일 보상은 못 받는다’는 자조적 이야기가 공무원들 사이에서 나온다”며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이 최소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처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단 이번만의 문제는 아니라며 “전국 지자체 공무원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산불뿐 아니라 구제역, 조류 독감 등이 발생할 때도 비슷하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매번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민원인의 도가 넘은 말과 행동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공무원의 근무 방침에 대한 보다 근본적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무원노조와 정부간의 ‘시간외수당 개선 소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채 부위원장은 “이번 산불 현장 등을 예로 공무원 시간외근무수당의 불합리한 점을 적극 피력해 공무원도  노동자로서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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