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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상투적인 갑질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  yju82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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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7  10: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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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2월 27일~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발표 없이 끝났다. 외교 관행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실무회담에서 합의문 초안을 마련한 뒤에 정상회담이 개최되므로 합의문에 대한 서명 없이 끝나는 경우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아무런 합의문도 채택하지 못한 채 끝난 정상회담의 사례로 1986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회담이 인용된다. 무려 33년 전 일이니 정말 이례적이라는 뜻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말 없이 끝난 데 대해 한동안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측이 영변 핵 시설의 일부 구역만 폐기하는 대가로 모든 대북제재의 해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북측은 모든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고 제재도 민생과 관련한 부분만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진실은 곧 드러났다. 세계적 통신사인 AP통신이 “이번에는 북측 주장이 맞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1일(현지 시간) ‘관료들은 트럼프가 제재에 관한 김(정은)의 요구를 과장했다고 말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다음,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의 요구를 과장했다.”면서 “이번 회담에서는 북측의 주장이 맞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미국 측은 정상회담에서 별안간 ‘영변핵시설 폐기+알파’를 꺼냈다. 실무진의 협의가 끝나고 합의문 초안이 마련돼 정상들의 서명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 측이 갑자기 플러스 알파를 들이민 건 상식 밖의 처사다. 미국 측이 합의를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술수를 쓴 것이다. 저자거리 양아치보다 못한 미국의 갑질은 상투적인 수법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트럼프가 뒤통수 쳤다.”고 분개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돌이켜보면 북·미 두 나라 협상의 역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유형의 반복이었다. 협상이 타결되고 합의안이 도출돼 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됐다 싶으면 어김없이 미국은 북측에 대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곤 했다.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와서 협상을 난관에 빠뜨리고 합의 이행에 난관을 조성하기 위한 술수였다. 북측이 반발하면서 분위기가 악화돼 북·미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냉각기에 들어서면서 그 영향으로 남북관계까지 악화되곤 했다.

1991년 9월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전술핵무기 철수를 선언하고 1992년 1월 팀스피릿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자 2월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북측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정을 체결하여 국제핵사찰을 수용했다. 그런데 ‘북이 핵무기 1~2기를 만들 수 있는 10㎏ 안팎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의혹을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들고 나왔다. 북측이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한 플루토늄 추출량과 차이가 커서 몰래 핵무기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었다.(이 의혹은 16년 후에 거짓으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이것을 핑계로 1993년 한·미 양국이 팀스피릿 훈련을 재개함으로써 ‘남북의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는 2002년 1월 핵태세보고서(NPR)를 통해 러시아, 중국,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조선 등 7개 국가에 대해서 핵 선제공격을 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급기야 미국은 그해 10월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북측의 비밀 핵개발 의혹을 제기한다.(2000년 미국의 핵무기 전문가가 북측의 지하 원자력 시설을 감찰한 결과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시설이 없음을 보고한 바 있다) 이로써 한반도 평화를 어렵게 유지해 왔던 제네바 합의는 파기되고 말았다. 어김없이 반복된 미국의 상투적인 갑질이었다. 미국의 핵위협에 심각한 위기를 절감한 북측이 첫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2006년 10월이었다.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제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선의에 기대하는 것도 일종의 환상이다. 그는 재작년 6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지난해 5월 이란 핵협정 탈퇴, 올해 2월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의 이행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에 따라 다른 나라들과 맺은 협정이나 국제협약을 상습적으로 일방 파기한 인물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오직 미국의 위상을 과시하고 자국의 실익을 챙기는 것이 목표일뿐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트럼프의 언행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체면과 위신을 따지지도 않을 만큼 노골적이다.

물론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유예됐다고 해서 섣불리 비관할 일은 아니다. 여전히 정전(停戰) 관계에 있는 북‧미 정상이 두 번의 만남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관계의 정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폄하할 필요는 없다. 북‧미 모두 일치하게 후속 협상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므로 생산적인 대화들이 계속 이어질 터다. 상호신뢰가 구축되면 논의가 진척되고 한층 더 진전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1970년대에 중국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북과 미국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 정상화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감상적인 기대와 낙관은 금물이다. 중국과 미국이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한 것은 1979년이다. 최초의 정상회담에서 정식 수교까지 7년이나 걸렸다. 중·미 관계 정상화가 지체된 것은 탄핵에 직면한 닉슨의 대통령 사임이라는 미국 내부의 문제 때문이었다. 북‧미관계 정상화에서도 미국 정치의 불안정이 변수라는 사실이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언제나 미국이 말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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