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인 2019년 정부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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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회의 중인 국회
▲ 본회의 중인 국회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지난 8일 새벽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9천억원 줄어든 총 469조 5751억원 규모다. 복지·보건·고용 예산은 정부안보다 1조 2천억원 깎이고, 대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정부안보다 1조 2천억원 늘어났다. 고용난이 심각하고 가계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는데 복지·보건·고용 예산은 삭감됐다. 반면에 도로·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늘어난 것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을 위한 증액 탓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역구의 서울 지하철 9호선 증차 예산 500억원을 챙겼다. 원래 정부 지원이 불가능한데 서울시 예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편법을 동원했다. 또 김포공항 부지 내 국립항공박물관 건립‧운영에 관한 예산 명목으로 60억3800만원을 증액시켰다. 김포공항 주변 고도 제한 완화 용역비 5억원, 그가 제정을 촉구한 ‘해외 건설인의 날’에 대한 예산 3억 원도 증액됐다. 총 568억3800만원이다. 지역구 선심성 예산 챙기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지역구인 세종은 국립세종수목원 조성 예산이 정부안보다 253억원이나 증액됐다. 그밖에 국립세종의사당 건립비 10억원, 세종 산업기술단지 조성사업비 5억원, 세종 지역의 위험도로 구조개선비 3억1300만원 등 각종 지역구 예산 총 271억1300만원이 늘어났다.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은 14조6480억원으로 올해에 비해 겨우 1.1%, 1484억 원 증액 편성됐다. 그마저도 국회 심의과정에서 877억400만원이 삭감돼버렸다. 김성태 의원과 이해찬 대표가 지역구 예산으로 증액한 총액 839억5100만원과 맞먹는다. 그러니 농민들 입장에서 보면 농업 예산 깎아서 두 의원의 지역구 예산을 챙긴 것으로 느낄 법하다.

 

심각한 문제는 국방 예산 증액이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2019년 국방 예산안은 46조7천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조5천억원이 늘었다. 8.2%나 증가한 것으로 이는 2008년 이후 최고 증가율이며, 2010년부터 2017년까지의 평균 증가율 4.4%의 거의 2배에 해당한다. 국방 예산 가운데 무기 도입 비용인 방위력개선비는 작년 대비 13.7%나 증가했는데, 박근혜 정부 때의 국방비 평균 증가율 4.1%의 3.3배가 넘는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국방 예산은 고작 21억5600만 원 삭감 시늉에 그쳐 거의 정부안대로 확정됐다.

 

군축이 필요한 시기에 국방비가 오히려 최고로 증액됐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국방비를 더 많이 늘리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남과 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 상호 불가침 합의 재확인, 군사적 신뢰 구축에 따른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을 합의하였다. 또한 <평양 선언>에서 한반도 전 지역의 전쟁 위험 제거와 이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에 포괄적으로 합의하고, <남북 군사분야 이행 합의서>를 별도 부속합의서로 채택한 바 있다.

▲ 2019년 예산 분야별 국회 증감 규모
▲ 2019년 예산 분야별 국회 증감 규모

한반도 정세는 평화체제로 진입하는 대전환을 맞이했다. 따라서 정부의 국방 예산도 과거를 답습할 것이 아니라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편성되어야 마땅하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으로 시작된 평화의 시대에 맞춰 군비 축소가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년 국방 예산은 감축은 커녕 되레 최고로 증액됨으로써 평화 시대의 요구에 역행하고 있다.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평화는 선언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은 군사비 지출 순위에서 세계 10위다. 한국의 국민총생산(GDP)은 독일의 절반도 안 되지만, 군사비는 세계 9위인 독일 군사비의 90%나 된다. 한국은 매년 정부 재정의 약 15%를 군사비로 쓰고 있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5배나 된다.

 

국방 예산 중에 3축 체계 사업이 있다. 3축 체계란 북핵·미사일 작전체계를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북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북이 핵무기로 위해를 가할 경우 미사일 전력과 전담 특수작전부대 등을 운용하여 북 지휘부를 응징 보복하는 대량 응징보복(KMPR)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발표된 공격적 억제 전략의 일환이다. 한국형 3축 체계는 북측에 대한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전략이다. 2019년 3축 체계 사업에 5조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전년 대비 8천억원, 15.3% 증가한 액수다.

 

그러나 남과 북은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을 통하여 이미 합의하였다.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며, “쌍방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침입 또는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3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5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책정한 것은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평양 선언>은 첫머리에서 “양 정상은 … 현재의 남북관계 발전을 통일로 이어갈 것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여망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천명하였다. 주목할 대목은 “정책적으로”라는 구절이다. 선언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뒷받침되어 실행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국방 ‘정책’은 선언을 무색하게 만든다. 정책적으로 실현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내년도 국방 예산이 명확히 실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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