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재벌개혁 대신 친재벌·친기업 정책으로 우회전 하는것

광주형 일자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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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 엽 (민중교육연구소장)
▲ 이 의 엽 (민중교육연구소장)

광주형 일자리를 말하다

경제민주화·재벌개혁 대신 친재벌·친기업 정책으로 우회전 하는것

 

이낙연 총리는 13일 국무회의에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현대자동차 근로자들로서는 어려움과 걱정이 있을 것이지만 작금의 심각한 고용 위축과 자동차산업 부진, 그리고 형편이 더 어려운 노동자들을 고려해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대승적으로 협조해 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학자와 언론까지 나서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해 한마디씩 보태고 있다. 14일 한겨레에는 [김동춘 칼럼_좌초 위기의 사회적 타협, ‘광주형 일자리’]가 실렸다. “노동 쪽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나쁜 일자리 창출’, 심지어 ‘정경유착’이라고 단정하는 민주노총의 입장이 타당한 것 같지는 않다. … 현대차노조나 민주노총은 ‘직접 임금’에 집착하는 관성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사회임금 확대, 숙련 향상을 통한 실질적 교섭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직접 임금에 사활을 걸면 더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경향신문은 16일 사설 [광주형 일자리 협상 시한은 넘겼지만]에서 이렇게 썼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현대·기아자동차 노조, 민주노총 등이 강력히 반발하며 총파업까지 예고하고 있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광주형 일자리 공장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른 자동차공장에 비해 낮고 단체협상도 유예되는 조건이기 때문에 노조가 이를 우려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고용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노사정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자는 사업의 취지를 살릴 길을 찾기 바란다.”

한겨레도 17일 사설 [새 일자리 실험 ‘광주형 모델’, 무산시켜선 안 된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노사 상생형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첫 완성차공장 설립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빠졌다. … 노동계의 반발도 일리는 있다. 완성차 업계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이 기존 노동자들의 처지까지 열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주거·의료·교육비를 지원해줌으로써 실질임금을 높이는 시도를 한다는 점을 아울러 평가해야 한다.”

사업타당성 따져봐야

우선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타당성 여부다. 사업의 타당성 문제에 대한 논의를 뒤로 한 채 “사회적 타협의 좌초 위기” “광주형 모델의 무산” 운운하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무엇이 목적이고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사업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 없이 추진하는 것은 맹목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투자사업인만큼 그것이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인지, 경제적 타당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광역시가 주도하여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현대자동차가 위탁 생산하는 완성차 공장을 설립하는 사업이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과잉생산(또는 과소소비)의 위기다. 생산을 해도 소비가 안 되면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 증가율은 2017년 2.5%에서 2018년 1.2%로 하락하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고, 세계 자동차산업은 구조조정에 직면에 있는 상황이다. 77년간 세계 1위를 했던 지엠(GM)도 판매 감소로 공장 폐쇄와 철수 등 생산 감소를 통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지엠의 군산 공장도 지난 5월 폐쇄되었다.

국내 생산 시설도 공급 과잉에 놓여 있다. 국내 자동차 생산은 2011년 466만대에서 2017년 411만대로 55만대 감소하였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판매하락과 수출 감소가 예상된다. 현대차 국내공장은 2012년 191만대를 정점으로 2017년 165만대 생산(5년 새 25만대 감소)에 그쳤고, 2018년 현재도 물량부족으로 4~5만대의 공피치가 발생하고 있다. 기존 자동차 생산 공장도 일자리를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인 것이다. 이처럼 생산 시설이 남아도는 형편에서 광주형 일자리 10만대 신설은 과잉중복 투자에 다름 아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신규 일자리 창출은커녕 과잉중복 투자로 기존 일자리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따름이다.

한국의 경차 시장은 17년 14만대 판매에 불과하고 올해 10월까지 11만대가 판매되었다. 19년 1월부터 울산3공장에서 경차 SUV QX(일명 레오니스)가 연간 10만대 규모로 생산되면 경차시장은 과포화 상태가 예상된다. 거기에다 광주형 일자리로 2021년에 10만대가 추가 생산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차가 안 팔리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거쳐 공장폐쇄의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설령 경차와 소형 SUV 국내 판매가 다소 증가한다고 할지라도, 신설 광주공장은 기존 기아차 모닝과 레이, 한국지엠 스파크, 현대차 코나, QX 등과 판매 경쟁이 가열되고 경영위기에 봉착할 위험이 크다.

지역갈등 조장 가능성도

백보 양보하여 광주형 일자리가 광주에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치자. 그러면 판매가 감소하는 다른 지역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풍선효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일시적으로 광주 시민의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차 본 공장의 울산 지역은 물론, 기아차의 모닝과 레이 경차를 위탁생산하는 충남 서산 지역, 프라이드와 스토닉을 생산하는 경기도 광명 지역의 민심은 싸늘할 것이다. 기아차 광주공장의 8,000여명 노동자 역시 광주 시민이면서도 반대 입장에 설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지역별 일자리 빼앗기 경쟁을 유발하여 지역 갈등을 조장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가 광주 지역에 장밋빛 미래를 선사하는 것도 아니다. 광주형 일자리의 노동자에게는 광주광역시가 주거, 교육, 의료, 기타 복지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실질소득 지원 및 삶의 질 향상 효과를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노동자 1인당 수혜 혜택은 연 700만 원 정도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광주광역시에는 빛그린산업단지 말고도 9개의 산업단지가 있다. 대개 연봉 2,500만원에서 3,500만원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고용돼 있다. 빛그린산단 노동자에게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기존 산단 노동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합작하여 신종 차별을 야기함으로써 사회적 분란을 조장하는 셈이다. 차별 시정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되레 지역 사회에서 차별을 조장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광주형 일자리는 재벌 특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정부와 여당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 추진에 안달이 났을까.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형 재벌특혜다. 노사민정 협치의 새로운 일자리 모델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빙자한 재벌특혜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위한 신설법인은 투자규모 약 7,000억 원이며, 이 중 현대차의 투자는 530억 원 수준이다. 135조2807억 원(2017년 말 기준)의 사내유보금을 갖고 있고, 2014년 한국전력 부지를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 원에 매입했던 현대차로선 고작 사내유보금의 0.04%, 한전 부지 매입비의 0.5%를 투자하는 것이다. 노동자 1000여명을 고용하는 대가로 광주광역시 재정 590억 원을 포함하여 6500억 원이 투자된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530억 원을 투자하여 자동차 10만 대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까지 발 벗고 나서서 광주형 일자리 관련 인프라 사업비 총 2912억 원 중 90%를 국비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마어마한 재벌특혜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정치적 함의는 무엇일까.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정치적(정략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책에 조바심을 내고 있어서다. 재계와 보수 세력은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집요하게 비난하면서 정부의 일자리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비난에 안간힘을 써 왔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와 여당은 일자리 정책의 가시적 성과를 내세우기 위하여 광주형 일자리 사업 띄우기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정치적 애드벌룬 효과를 기대하는 것일 터다.

노동자 희생만 강요

주목할 것은, 정부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가시적인 성과가 다급해지자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대신에 혁신성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재벌의 투자에 의존하는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정책은 규제 완화와 노동권 축소의 재벌특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포기하고 친재벌, 친기업 정책으로 우회전하는 것이다. 임종석 비서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홍영표 원내대표 등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연일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하고 민주노총을 공격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귀족 노조’ 프레임으로 민주노총을 공격하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재벌특혜에 올인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을 연상시킨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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