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도 노동자다’ 외친 투쟁·희생의 역사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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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공무원노조 총파업으로 해직된 이승찬(좌), 신종순(우).
▲ 2004년 공무원노조 총파업으로 해직된 이승찬(좌), 신종순(우).

공무원노조사에는 많은 역사의 증인들이 있다. 그중 용산구에는 이승찬 선배가 있다.

97년 1월 공노준 결성 멤버로서 98년 2월 공무원직장협의회 법률 통과와 함께 공직협 준비모임의 공동대표로 공무원임금 10% 삭감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집단행동이라는 이유로 해임되었다가 2000년 4월 승소 판결로 복직하였다. 그리고 2001년 용산구공무원직장협의회를 창립하였다.

이런 선배들로부터 시작된 공무원직장협의회는 99년 12월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발전연구회(전공연)를 구성하였고 2001년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이 발족되면서 기존의 전공연은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으로, 전공련은 2002년 3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을 창립하였다.

직장협의회에 안주하지 않은 공무원노조는 비로소 “공무원도 노동자다”라는 보다 구체화된 공직사회개혁과 부정부패척결을 기치로 선배들의 희생속에서 역사와 함께 진보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꿈꿔 왔다.

나는 이승찬 선배에 이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2,3기 용산구 지부장을 역임하였고 2004년 공무원노조 특별법저지 총파업으로 파면되어 23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 한 채 이승찬 선배(파면)와 함께 용산구지부 13명의 징계자들(파면7, 해임6)을 포함한 78명으로 구성된 서울본부 회복투위원장으로 2005년 1월부터 2006년까지 400여명 이상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동지들과 함께 원주시를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무원노조 탄압분쇄 및 부당징계 철회” 투쟁에 참여했다.

공무원노조에는 총파업 투쟁 이전에만 39명의 구속 등 사법처리자와 공무원노조 해직 1호인 정용천 동지 등 30명의 해직자가 있었고, 총파업 이후에만 80명의 구속 등 사법처리자와 500여명 이상의 해직자, 그리고 2000여명 이상의 징계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아직도 복직하지 못한 희생자들 100여명은 오늘도 청와대 앞에서 공무원노조 투쟁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해직자 원직복직 쟁취” 노숙농성을 진행하며 2,716일차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어디쯤 와 있는가?’

‘공직사회개혁과 부정부패척결의 기치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가?’

‘그 수많은 희생자들은 그저 스쳐 지나간 공무원들이었나?’

‘지금 회복투 희생자들의 복직투쟁은 과연 그들만의 문제인 것인가?’

나는 공무원노조 활동에 있어서 2004년 총파업 때의 파면 보다 더 눈물 나고 가슴 아팠던 사건이 2007년 공무원노조의 조직 분열이었다. 당시 서울본부 회복투위원장으로서 뜻있는 동지와 함께 미력하나마 분열을 막고자 부산으로 광주로 열심히 쫒아 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다행히도 2009년 1월, 법원노조까지 더해 통합이 추진되었고 나도 통합추진기획단의 일원으로 기쁜 마음으로 2009년 5월 통합을 이루어 내었고, 2009년 9월 통합 투표에 이어 2009년 11월 선거로 제5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선출되면서 2012년 2월까지 5대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 2005년 3월 23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회복투 출범식
▲ 2005년 3월 23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회복투 출범식

당시 공무원노조는 이명박정권의 광폭한 탄압으로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라는 광고와 범국민대회 참여를 이유로 2009년 말 100여명이 징계를 당했고 양성윤위원장과 함께 18명이 해임되었다. 또한 이명박정부는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87개 지부사무실을 강제 폐쇄하였다. 이에 위원장의 노숙농성을 시작으로 이듬해 1월부터 “노조탄압 중단과 대국민 홍보를 위한 전국 동시다발 공동행동”에 돌입하였고 회복투 동지들은 3월에는 원주시장 규탄대회를 시작으로 2주간의 전국순회, 4월에는 제주에서부터 삼보일배 투쟁을, 5월부터 지금까지 청와대와 행안부를 상대로 해고자 원직복직 쟁취 1인 시위 및 노숙농성 등 “노조탄압 분쇄 및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당시 조직 통합은 되었으나 일부 희생자들은 조직분열의 후유증으로 악수도 하지 않는 등 회복투의 진정한 통합이 필요했고 총파업 투쟁 6주년에 즈음하여 원직복직 쟁취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홍영표 의원 발의로 제18대 국회에 “해직자원직복직특별법안”을 발의하였다. 2010년 11월 23일 부터 2011년 6월 22일까지 국회방문을 통한 국회의원 면담과 동의서명, 선전전과 결의대회 등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비닐천막에 의지한 채 212일간 여의도 농성장을 거점으로 해고자들의 원직복직을 위한 전면적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러한 투쟁으로 인해 희생자들은 조직분열의 아픔을 극복하며 뜨거운 가슴으로 다시 동지가 되었다.

나는 비록 동지들을 남겨놓고 복직을 하지 못한 채 정년을 맞이하였지만 후배 동지들은 15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의 분을 삭히지 못한채 지금도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내가 처음 투쟁에서 두른 이마의 붉은 띠도, 구호를 외치는 팔뚝질도, 투쟁가도, 결사투쟁의 후렴 구호도, 동지라는 말도 모두 생소했지만 “공무원노조 정당하다” “탄압을 중단하라” 외치며 투쟁을 거듭해 오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공직사회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부당한 탄압에 맞선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올바른 민주사회를 만들 수만 있다면 지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회복투 동지들이여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굳건히 희망을 끈을 놓지 마시라’

‘14만 조합원들이여 공무원노조 투쟁의 역사와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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