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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노동자 합동추모제 참석 일본 여행기
김대현(전국공무원노동조합 통일위원장)  |  kelsid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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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8  14: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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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여 조선인 수장시킨 비극의 우키시마 마루호 사건 추모

국가 아닌 동네 주민들이 73년째 위령제…뼈아픈 역사

김대현 전국공무원노조 수석 부본부장이 '일본 강제징용 노동자 합동추모제' 참석차 일본을 다녀 온 참관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둘째날 오후 일정은 ‘단바망간기념관’ 일정을 대체하여 리츠메이칸대학의 국제 평화 박물관과 임진왜란의 원흉인 풍신수길 신사와 일본 장수들이 임진왜란 때 본인의 공을 자랑하기 위해 조선인의 귀를 잘라 전공 삼아 가져온 것을 묻어놓은 ‘귀 무덤(코 무덤)’을 방문하였다.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와 역시나 자랑스럽지 않은 우리의 현재의 역사를 마주한 씁쓸한 하루였다.

3일차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었고 일본인이 73년 동안 주관해온 마이즈루 위령제).

   
 

마이즈루[舞鶴] 항은 교토에서 차로 약 3시간을 가야 하는 곳이라 우리 일행은 출발을 서둘렀으나 일행 중 한 분이 여권을 분실한 통에 다소 지체되어 9시경에 출발할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 청년은 오늘 위령제는 73주기인데 이 위령제 자체가 동네 주민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모든 준비를 주민분들이 직접 하는 행사라, 세월이 흘러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거의 대부분인 만큼 위령제 후에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면 어떻겠나고 제안하자 모든 일행이 기껏이 그렇게 하겠다고 화답하였다.

출발이 늦어진 탓에 우리는 행사가 절반 정도 끝나는 11시 30분경에 도착하여 준비된 자리에 겨우 착석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추모사 부분은 거의 끝나가고, 조선학교 여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들이 ‘해당화’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곡은 일본어와 한국어로 불렸는데 곡조가 애잔하여 그날 죽어간 이들 의 아픔이 전해졌다. 그리고는 위령제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바다에 꽃을 던지는 헌화의 순서를 가졌다.

조선학교 여학생 합창단의 추모곡 '해당화' 동영상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20분경. 일본 교토 북쪽 마이즈루[舞鶴] 만에 있는 작은 군항 시 모 사바가 [下佐波賀] 앞바다에서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浮島丸·4,730톤]가 요란한 폭음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았다. 이 사고로 일본은 공식적으로 549명을 사망자로 발표하였으나 승선된 조선인 7000여 명 중 40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우키시마 마루(號) 순난자 추도식은 1954년 4월부터 시작되었고 1965년부터는 매월 8월 24일에 개최되고 있다. 이후 사고 발생 33주년이 되는 1978년 8월 24일 ‘마이즈루 우키시마 마루호 순난자 추도의 비 실행위원회’가 설립되어 우키시마 마루호가 폭침된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 언덕 위에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위령비를 세우고 그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였다.

위령제가 끝난 후 우리는 동네 어르신들을 도와 텐트며 의자 등 각종 기물들을 정리하였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정리하면 3시간 정도 걸리는 일을 우리는 불과 30분 만에 정리를 하여 약 세대의 트럭에 실어주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요에 카스 히코’선생님은 여러 번 고맙다는 인사를 우리들에게 한국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고맙다는 표현은 우리가 해야 하는데 여러 번 허리를 숙어 우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는 선생님을 보니 일본인들에게 가졌던 막연한 분노가 한없이 사그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리가 끝난 후 추모 동상을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었다. 어머니의 오른손은 물에 빠진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있고 왼손은 어린아이를 안은 체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머지 세 명의 군상은 어머니 상 주위에서 물속에 빠진 체 무심한 표정으로 또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누워있거나 서로 기대여 있는 동상이었다. 설명에 의하면 어머니 상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부산이라고 한다.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어 일본인에 의해 73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조선인 노동자 합동추모행사, ‘요에 카스히코’ 선생님은 앞으로도 계속 73년 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모든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마지막까지 트럭에 물건을 내려 정리하는 일까지 함께해준 우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허리를 숙여 계속하셨다.

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은 이러한 분들 의해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간사이 공항의 귀국 비행기를 향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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