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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사람들
김민철  |  winkorea67@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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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3  12: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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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무더운 올 여름, 7월 18일 오후 2시 30분 일본 참의원의원회관 제1면회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장에서 배포된 유인물의 제목은 “외국국적 BC급전범자 문제, 당사자가 살아 있는 동안 ‘특정연합국재판피구금자특별급부금지급법안’의 의원입법 실현을 호소합니다.”였다. 기자회견장에 올해 93세의 이학래 씨가 나와 있었다. ‘한국인 전 BC급 전범자․동진회’ 회장으로 어쩌면 마지막 기자회견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힘겹게 호소의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했다가 기자회견을 위해 무리한 몸을 끌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디, ‘헤이세이’ 시대가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우리들이 죽기 전에 법안을 성립시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바라며 호소합니다.”

1942년 당시 ‘월 50엔, 2년 계약’이라는 모집 조건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더구나 탄광으로 징용가거나 징병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해서 17세의 어린 나이에 이학래는 일본군 군속으로 연합군포로 감시원이 되었다. 배치된 곳은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도 악명을 떨쳤던 ‘태면철도’의 공사 현장. 밀림을 뚫고 건설하는 철로 공사는 그야말로 사투였다. 가장 오지에서 건설을 맡은 ‘F 코스’에서는 약 7천명의 포로 가운데 3천명 정도가 죽었다. 공기 일정을 절반으로 앞당기라는 상부의 독촉, 부족한 배급, 원시적인 의료시설과 빈약한 의료품, 부상당한 포로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말라리아, 일상적인 구타와 학대. 포로들은 매일같이 죽어나갔다.

이학래는 전후 포로학대죄로 사형판결을 받았으나 운 좋게 감형되었다. 사형판결의 이유였던 포로수용소의 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었을까. 조선인 148명이 전범으로 되었고, 23명이 사형당했다. 일본인 전범들이야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서 죽었다고 위로할 수도 있겠으나, 사형당한 조선인 전범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죽어야만’ 하는지도 모른 채 죽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도 죽음과 큰 차이가 없었다. 1956년 스가모형무소를 가출옥한 뒤, 일부는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다. ‘전범’ ‘친일파’ ‘범죄자’라는 낙인은 정상적인 삶을 파괴했다. 감옥에서 나온 그들의 삶은 말 그대로 버림받은 존재들의 생존이었다. 생활고에 못 이겨 어떤 이는 자살하고, 어떤 이는 정신병자가 되었다.

일본에 남은 조선인 BC급 전범 출신자들은 일본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죽은 동료들의 한을 풀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일본정부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일본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기 위해 사법부에도 호소했다. 결론은 똑 같았다. 다만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했다. 그래서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의원들을 상대로 한 입법 활동도 벌였다. 그 세월이 벌써 60년이 훌쩍 지났다.

한국 정부에도 죄스런 마음을 갖고서 조심스레 호소한 적이 있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 정부가 BC급 전범 출신자의 문제를 다뤄줄 것을 요청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BC급 전범 출신자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일본 정부가 ‘뒤에 따로 논의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한일협정 이후 이 문제를 따로 논의한 적은 없다.

그러면서도 일본정부는 거짓말을 했다,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1973년 박정희 정부가 한일청구권자금 중 일부를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이때도 BC급 전범 출신자들은 한국정부에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대상이 아니다’는 답변뿐이었다. 더 이상의 호소하는 것도 미안했을까. 한국 정부를 향한 호소는 그걸로 끝났다.

조선인 BC급 전범 출신자들은 그렇게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버렸다. 그들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떠안게 되었으면서도 전후 일본의 원호정책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는 존재이자 한국 국가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지워진 존재가 되었다. 국가와 공동체로부터 배제되거나 추방당한 전형적인 ‘호모 사케르’였다.

일본 정부의 차별 정책과 한국 정부의 기민 정책이 만들어 낸 피해자들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다. 일본군으로 소련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사람들, 사할린에 버려진 동포들 역시 그런 피해자들에 속한다.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지도 벌써 73년이 되었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도대체 국가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보호하지 않은 국가라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은 국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 많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와 사법농단에서 드러났듯이 한국의 지배엘리트들에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비롯한 약자들은 안중에 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 일을 태연하게 벌였다.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외교부, 그리고 미쯔비시와 신일철주금을 대리한 ‘김앤장’의 추악한 거래에서 우리들은 경악과 충격을 금하지 못한다. 한국의 지배엘리트에게는 국민이 ‘개, 돼지’가 아니면 잘해야 거래 대상에 지나지 않는 존재일 뿐인가.

일본에서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학래 씨에게 한국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버림받은 자, ‘이학래들’에게 이번 8월이 다른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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