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라는 미신을 넘어서는 진정한 복지국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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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토론회
▲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토론회

1943년 인도의 벵골 지역에 극심한 기근이 들이닥쳤다. 무려 700만 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낳은 이른바 ‘벵골 대기근’이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이 전대미문의 참사 속에서 인류는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잉태한다. 당시 벵골 지역에는 총명하고 마음이 따뜻한 한 소년이 있었다. 대기근의 참상을 목도한 이 소년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왜 가난한 사람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결국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집요한 공부를 시작한다. 그가 바로 1998년 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후생경제학의 대가(大家), 경제학계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아마르티아 센(Amartya Kumar Sen)이다.

센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사회”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사의 진보는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다.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풍부한 물질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다.”

성장에 대한 환상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소득주도 성장을 두고 연일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이 논쟁을 펼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성장이 과연 언제나 옳은가?”라는 질문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자들조차 “소득이 성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이론을 펼친다. 그런데 이는 한국 자본주의가 수 십 년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지겨운 굴레와도 같은 것이다. 한국은 너무 오랫동안 고성장 가도를 달려온 덕에 낮은 성장률이 곧 경제의 위기라고 굳게 믿는다. 성장을 못한 경제는 실패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성장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본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도시샤(同志社) 대학 하마 노리코(浜矩子) 교수의 주장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하마 교수는 “일본은 우아하고 품위 있게 늙어갈 준비를 하자”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일본의 경제 규모는 충분히 커졌으므로 더 이상 성장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수출에 목을 매다보면 저임금 국가들과 경쟁하느라 자국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 이렇게 하면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은 높아질 수 없고 내수도 나아지지 않는다.

대국 강박증이 아니라 국민의 삶에 시선을

우리는 다른가?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에 국부의 총량이 부족하냐는 말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빨리 성장해야 해!”라는 부추김은 대국(大國) 강박증일 뿐이다. 도대체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니, 국민소득 3만 달러니 하는 수치가 민중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 성적표가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풍요롭고 사는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다.

당면 과제가 성장이 아니라 분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 분배구조를 개선할 것인가 하는 점은 부분적인 문제다. 부유세를 도입하건,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건, 최저임금을 더 빠른 속도로 높이건, 이는 모두 기술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배가 근본적 문제라는 점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정부가 펼치는 복지 정책에 관한 논쟁도 마찬가지다. 이런 논쟁이 국지적인 쟁점에 머무르면 복지는 예산의 문제가 되고, 국가가 국민을 돌보는 문제가 된다. 복지는 동정과 연민에서 시작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의 문제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문제다.

지금은 ‘고성장만이 살 길’이라는 미신을 버리고 ‘정의로운 분배구조를 가진 평등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굳건한 믿음 아래에서 새롭게 사회를 설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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