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 허용, 안보국가에서 정상국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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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근거가 된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이나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내년 말까지 병역법을 고치라고 정부·국회에 주문했다.

헌재의 결정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병역기피로 취급하여 형사처벌을 가해온 법과 관행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입영거부는 곧 감옥행이었다. 누구를 해친 적도 없고 누구의 것을 뺏은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역을 살아야 했다.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는 병역법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현행 병역법은 입영 통지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 처벌을 받은 사람이 2만여 명에 달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헌재는 “2004년에 국회에 대안 검토를 권고했는데 14년간 진전이 없었다. 이 문제의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의견을 냈다. 그동안 정부·국회·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이 논의됐고, 법원에서는 병역기피에 대한 80여 건의 무죄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국회·대법원은 공히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해 차일피일 미루면서 직무유기를 했다.

헌재 결정이 나온 만큼 이제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국회는 병역법 개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오는 8월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예정하고 있는 대법원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병역법상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여 무죄 판결을 내려야 마땅하다. 내년 말까지 끌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대체복무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정부·국회·대법원이 모두 나서야 한다.

1998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를 도입하되, 징벌적 성격이 아닌 비전투적 성격이어야 하고 공익적이어야 한다’고 결의한 바 있다. 대체복무제는 군 복무 면제나 특혜가 아니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존중하면서 현역 복무와 형평성이 맞는 복무를 부과하여 공동체에 기여하게 하는 제도이다. 대만, 이스라엘 등 20여개 나라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대체복무제를 참고한다면 우리나라에 맞는 제도를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터다.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대한민국이 정상국가로 이행하는 이정표이다. 분단체제하의 대한민국은 안보국가(National Security State)이다. 안보를 중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의 희생까지 강요하는 국가라는 의미다. 안보국가에서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신화가 지배하고,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여성과 장애인 등은 의무를 다하지 않은 비정상의 이등 국민 취급을 받는다. 대체복무제의 허용은 대한민국이 정상국가로 이행하고 있다는 표식이다.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선언에서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천명하였고, 북·미 정상이 6.12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의 의지를 밝혔다. 한반도에서 정전상태가 종식되고 평화체제가 수립되는 것은 필연이다.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상호 신뢰가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이 실현될 것이고 그에 따른 징병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 대체복무제 도입에서 한걸음 나아가 군축과 징병제도 개선에 대한 전향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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