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본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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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본 우리 역사

선조에서 이승만까지 지도자 무능이 근원

수많은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은 선장과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이 원인이었다. 더욱이 사고 직후 선장의 행동과 해경의 구출작전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자료 등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단순 사고라고 보기에는 비정상적인 점이 너무 많아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도덕성의 일탈이 너무 크다.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던 이승만은 1950년 6월25일 전쟁이 발발하자 27일 비상 국무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을 뿐더러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육군본부에도 알리지 않고 대전으로 피신한다.

대전에서 마치 국민과 함께 서울에 있는 것처럼 함께 서울을 지키자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한다. 이후 아무런 대책 없이 수많은 서울 시민을 그대로 둔 채 한강 다리를 예고없이 폭파해 버린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 또한 한강을 방어막으로 결사항전하면 승산이 있는데도 충분히 싸워보지도 않고 대책없이 의주로 피신한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수많은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린다. 왜란이 끝나고 공훈을 평가할 때 선조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흘리며 싸운 의병보다 자기 말몰이꾼에게 더 큰 공을 준다.

세월호 선장은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에서 조차 수많은 학생들이 배안에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고 대피방송 한마디 없이 자기부터 탈출했다.

지도자도 한 인간이기에 위험을 피하려는 본성에 충실히 따르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이준석과 이승만, 그리고 선조의 인간 본성 심층구조에 인간은 존엄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는 사건들이다.

개 돼지도 홍수가 났을때는 풀어주어 제 살길을 찾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겠는가?

세월호의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조금이 드러나고 있는 이 때 사고원인이 세월호 선내에 존재 했다기 보다는 외력의 존재가 있었다는 근본적인 재조사의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주장들이 우리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부디 도덕적 타락과 경제적인 물질만능주의에서 기인한 예견된 인재와 사고 대처에 무능한 정부의 합작품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기록되길 바란다.

그러나 발달된 정보기술에 편승한 성숙된 시민의식과 사회 저변에 깔려진 합리적 비판의 목소리는 비주류 언론을 타고 넘어 확산 일로에 있다. 선장 개인의 탈출본능과 비도덕성 그리고 너무 아마추어적인 구조과정 뒤에 숨기려고 했던 또 다른 진실이 무엇이었을까? 만약 그것이 있다면 순수한 어린 고등학생들의 목숨보다 더 값질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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