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12일째 단식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공무원노조 회복투 김은환 위원장을 만났다. 농성장은 청와대 입구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효자로 길바닥에 세워졌다. ‘동향’인 농성장은 오전만 잠깐 따뜻했을 뿐 온종일 응달이라 더 춥게 느껴졌다. 김은환 위원장은 겨울 외투를 입고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따뜻한 웃음으로 맞았다. 건강 상태를 묻자 그는 “괜찮아요. 잠도 잘 자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무기한 단식 노숙 투쟁’. 해직 공무원 생활 14년차인 그가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은 투쟁의 방식이 있을까... 시위와 집회를 하다 경찰에 연행된 수는 헤아릴 수 없다. 그는 공무원연금투쟁과 4.16 세월호 추모 집회, 국회 본관 계단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친 이유 등으로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 그도 단식농성은 처음이다.
인간의 생존과 활동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인 음식물을 끊는 ‘단식투쟁’은 어떤 요구와 주장의 가장 강력한 표현방식이다. 그런 극단적 투쟁을 감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고 간절하다는 의미다.
“회복투 136명 중에서 이미 퇴직한 선배들이 있고 올해 또 10명 정도가 퇴직을 하면 100명이 채 안 남게 됩니다. 복직되지 못한 채 퇴직하는 동지들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요. 명예회복도 해야 하고요”
김 위원장은 회복투 내부의 이런 상황과 더불어 대통령 집권 초기, 4월 임시국회가 열리는 이 시기를 집중투쟁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단식 농성의 요구 사항은 대통령의 원직복직 약속 이행과 국회에 계류 중인 공무원해직자복직특별법 제정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때부터 공무원노조 해직자 복직을 약속했다. 하지만 임기 1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노조 해직자 136명 중 대부분은 2004년 정부의 공무원노조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며 벌인 총파업으로 해직된 이들이다. 공무원노조특별법에 반대했던 주된 이유는 특별법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 중 단체행동을 금지하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마저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등 공무원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달 26일 발의한 개헌안에는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이 명시돼 있다. 14년 전, 총파업까지 불사했던 이들의 요구가 정당했다는 것을 이보다 명백히 보여주는 게 또 있을까.
지난해 초 발의된 공무원해직자복직특별법안도 국회 행정안전위에 1년째 잠자고 있다. 18대와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해직자복직법안도 그렇게 계류되다 국회 마감과 함께 사라졌다. 이번 복직 법안만큼은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 복직특별법안이 최소한 논의라도 됐으면 하는 게 진짜 바람입니다. 18대와 19대 때도 법안이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어요. 행안위 법안 심사 소위에 상정돼 논의가 되면 해직자복직에 대한 청와대나 여야의 입장이 드러나게 될 테고 그러면 하반기 정기국회 때 투쟁 목표가 뚜렷해질 수 있죠”
하지만 4월 임시국회에서 해직자복직특별법이 논의될 전망은 희박해졌다. 김기식 금감원장이 선심성 외유와 정치후원금 논란에 휘말려 낙마하고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 으로 여야는 극한 대립으로 치달아 개점 휴업 중이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 앞 농성장을 꾸리면서 “광화문농성장을 부수고 이 자리로 올라오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회복투는 지난 해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천막 농성장을 세워놓고 청와대 앞과 정부청사 등에서 1인 시위를 이어왔다. 가림막조차 칠 수 없는 청와대 앞 농성장에 비해 세종로공원 천막 농성장은 그래도 비를 피하거나 ‘쉴 만한 공간’이었다.
“비가 오거나 여기서 좀 불편하면 광화문 농성장에 가서 자면 되지, 이런 생각이 들까봐” 광화문 농성장을 “부수고 오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 후퇴할 여지를 아예 없애버리려 했다는 것에서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치고 파부침주의 심정으로 이번 투쟁에 임하는 그의 각오를 볼 수 있었다. 광화문 농성장은 김 위원장의 바람과는 달리 금속노조에게 양도됐다.
김 위원장은 “해직자 복직을 요구하면 정부나 국회에서 하는 얘기가 먼저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라고 말하는데, 사회적 공감대란 그걸 약속했거나 의지가 있는 사람이 확실하게 자기 책임으로 가지고 가면 저절로 동의가 되는 그런 거 아닌가요. 대통령이 약속하고 해고당한 사람이 15년째 길바닥에 앉아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사회적 공감대를 높이란 말인지 모르겠어요”라며 정치권의 ‘책임회피’에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에게 ‘해직자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정부청사나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으러 가는 걸 봅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끼리끼리 밥을 먹으러 가는데 우리는 길바닥에 앉아 있거나 1인 시위를 서고 있는 거죠, 아주 대조가 되는 상황이에요. 일상 속에서 남들이 하는 평범한 일에서 배제된 순간마다 ‘아, 내가 해직자구나’를 느낀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복직 쟁취 투쟁을 통해 “오랜 해직 생활과 복직 투쟁으로 지칠 대로 지친 회복투 동지들이 이번 투쟁을 계기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더욱 돈독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몇 해 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민주노총, 전교조 조합원들과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친 이유로 재판을 받은 그는 최후진술에서 판사에게 “당시 박근혜 퇴진을 외쳤는데 내 소원이 이뤄졌기 때문에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어떤 처벌을 받아도 괜찮다”고 말했다고 한다. 1심 판사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자신을 처벌할 권한을 쥔 판사 앞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그 당당함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저는 공무원노조가 처음에 왜 공무원노조를 시작했는지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공무원노조는 정말 어디 하소연할 데 없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지요. 대한문에서 쌍용차 농성장 걷어내고 곳곳에서 농성하는 투쟁사업장 철거하는 일, 그거 다 공무원들이 하고 있잖아요. 법을 떠나서 정말 자기 생존권 요구하는 사람들의 표현인데 그걸 막는데 동원되는 거, 최소한 그런 것은 우리 노동조합이 막아야 되지 않을까요”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이 제 이익 찾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왜소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조합원으로서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공무원노조가 정말 국민을 위한 행정,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은환 위원장은 지난 20일 16일간의 단식 농성을 풀고 현재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다. 노조는 20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직접 농성장을 찾아 ‘청와대‧인사처 등과 사전 조율해 공무원해직자 복직 관련 당,정,청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힌 후 김 위원장의 단식 중단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