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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동학 농민운동에서 본 촛불혁명역사이야기
이종두(북구지부 조합원)  |  kelsid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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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1  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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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세기말 조선은 삼정문란과 세도정치로 인하여 시대 말기적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 이는 시대의 대변혁기를 암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전라도는 물산이 풍부한 곡창지대로 조선 전시대에 걸쳐 수탈의 대상이 되어 농민들은 항상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1894년 2월 10일 고부군에서는 권문세도가 풍향 조씨 조병갑(趙秉甲)의 지나친 가렴주구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정당한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주동자 색출이라는 명분아래 탄압은 지속 되었다.

   
 

드디어 1894년 3월 20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아래 백산에서 전봉준을 중심으로 김기범, 손화중 등이 농민군대를 조직하고 봉기함으로써 단순한 지역 민란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혁명군대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황토현 전투를 시작으로 그 세력은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전시대에 걸쳐 어느시대에나 말기에는 탐관오리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매관매직이 성행했던 이 시대에 특히 전라도만 관리들의 횡포가 심했다는 특별한 근거는 없다. 이 시대 소규모 민란의 여러 곳에서 일어났었고 전라도가 곡창지대인 만큼 수탈의 표본이 되었을 뿐이다.

전봉준 농민군의 급속한 확산은 이미 동학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열망이 농민들 마음속 깊숙이 역사대대로 면면이 이어져 오던 인간에 대한 존중사상 기반위에 움트고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텐진조약으로 청과 일본의 군대가 출병함으로써 동학군은 전주에서 관군과 화약을 맺은 후 집강소를 통한 자치를 실행하지만 결국 청일전쟁의 승자인 일본과 관군의 연합군에게 우금치에서 패배한다.

30만의 농민군들은 1천명도 안되는 현대식 무기 앞에 무참히 쓰러져갔다. 혹자는 무모한 전투에 참여하여 쓸데없는 개죽음을 택했으며 역사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는 역사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가 목숨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불의 앞에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리다. 농민군은 백산봉기에서 이미 개·돼지로 살기보다는 더 좋은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이미 고귀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것이다.

고귀한 목숨의 대가는 당대 갑오개혁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그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자국의 백성을 외세를 통하여 제압해야 겠다는 생각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지금 같으면 촛불 집회가 일어났다고 미군이나 일본군을 동원하는 일이다.

역사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났던 과거 사건들 중에 의미있는 것을 취사선택하여 해석하는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라고 했다. 종교, 가치, 정치구조 등 모든 삶의 구조의 틀이 바뀌어가고 있는 그 때,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는 그 동안의 王政의 시대에서 民本의 시대로 변화하는 대변혁기로 해석하여 역사를 민의가 확대해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굳이 말하자면 그 동안 5만년의 역사를 왕정이라는 선천개벽의 시대로 앞으로 5만년을 민(民)이 주인되는 후천 개벽의 시대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이 시대의 삶이 엄청난 개혁 변화의 시대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수운 최제우의 집안은 폐쇄적인 영남지역 유림 최고의 맥을 이은 퇴계정통의 계보가 있는 집안에서 공부한 후 이를 극복하고 기독교 유일세계관 서학을 공부하였다

다시 서학의 세계관에 머물지 않고 민본역사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조선 건국이념을 받아들여 우리 고유 민본의 맥을 동학으로 완성하였으며 이는 오늘 날의 촛불혁명과 맞닿아 있다.

조령 이남 지역인 영남은 아직도 수운 최제우가 극복했던 조선 유림의 폐쇄성을 잃지 않고 있다. 지금도 PK라는 보수의 맥이 이어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추앙하는 미국식 민주주의는 1920년대에 여성이 1960년대에 흑인이 참정권을 가짐으로서 그 완성이 겨우 5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동학의 민본철학을 근간으로 농민의 열망을 담은 동학농민운동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유무상자(有無相資) 세계관을 만들어 냈으며 이는 인류 보편적인 세계관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결국 이러한 민본 민주주의 세계관이 역사저변에 면면이 흘러내려와 촛불혁명이라는 완성된 무혈의 혁명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역사가 후퇴한 듯 하지만 조금씩 그 두께가 두꺼워지는 나선형의 발전모습을 목도하고 있고,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보편적 세계관의 실천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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