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항쟁' 그 원혼을 기리며

4·3항쟁 70년…풀리지 않는 한(恨) 아직도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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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올해는 제주 4·3항쟁이 일어난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현재 제주에서는 4·3 70주년을 알리고 추모를 위한 동백꽃 뱃지 달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요.

이 행사는 4·3 당시 희생당한 제주도민들의 붉은 피를 연상시키는 동백꽃과 그들의 70년간의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알리고자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백꽃이 4·3을 상징하는 꽃이 된 이유는 1992년 제주출신 강요배 화백의 4·3 연작 ‘동백꽃 지다’에서 유래가 되어 제주 4·3 당시 희생된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추운 겨울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스러져 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많이 찾는 제주지만 과연 1948년 4월의 제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제주 4·3은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으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제주 4·3은 무려 7년간 지속된 민중항쟁으로써 일본 패망 후 한반도를 통치한 미군정 체제의 사회문제와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해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3만여 명의 참혹한 인명 피해를 가져온 사건입니다.

또한 이러한 제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한 진상규명 노력은 1970~80년대 학살극을 폭로한 소설가와 시인들이 공안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받거나 구속되는 등 정권의 탄압을 받게 됩니다.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발표돼 4·3의 참혹상을 정면으로 폭로하면서 18년만에 4·3 논의의 물꼬를 텄으나 소설은곧 판금되고 작가는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1987년엔 이산하 시인이 4·3을 소재로 ‘한라산’이라는 시를 썼다가 옥고를 치뤘습니다.

이후 1999년 제주4·3사건 특별법 공포로 2003년 10월 4·3사건의 진상을 담은 정부의 공식 보고서가 확정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를 방문하여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하였으며 2014년부터는 제주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어정부 주관의 행사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가권력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들의 보상, 재판도 없이 감옥에 끌려가 살상된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 생사조차 알 수 없이 행방불명된 사람들, 제주4·3을 폭동이라 하며 제주를 ‘빨갱이들의 천국’으로 매도하는 역사왜곡,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사과 문제 등이 남아있는 한 제주 4·3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입니다.

잊지 말야아 할 아픈 역사인 제주4·3 항쟁.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의 희생을 모두 함께 마음으로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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