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과 클래식

죽음과 소녀(Schubert : String Quartet No. 14 d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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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라는 로만폴란스키 감독의 영화(개봉명 : 시고니위버의 진실) 의 첫 장면에서 영화이름과 같은 제목의 슈베르트 현악4중주가 연주되자 주인공 파올리나(시고니위버 분)의 불안에 떨고 손을 남편 헤라르도 에스코바(스튜어트 윌슨 분)가 잡아 주는 장면이 나온다.

불안해 하는 이유는 15년 전에 파올리나가 젊은 시절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다 붙잡혀 눈이 가린 채 이 음악을 들려오는 방에서 전기고문과 성폭행을 당했던 악몽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흔들렸던 주인공의 감정과 살고자 하는 희망이 교차되어 음악이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실내악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현악사중주는 대체로 바이올린 2대,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클래식 음악을 편안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관현악곡, 협주곡, 교향곡, 독주곡, 실내악 순서로 들으라고 권할 만큼 현악 4중주는 접근하기 쉬운 형식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빠져들면 4개의 악기들이 들려주는 대화의 매력은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1824년에 완성된 “죽음과 소녀”는 1817년 작곡했던 가곡<독일 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 죽음과 소녀 op.7, no,3- 죽음의 공포에서 달아나려고 몸부림치는 소녀의 생명을 힘있게 >의 선율을 2악장에 다시 사용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 곡은 총 4개 악장으로 되어 있다. 1악장(Allegro)은 소나타 형식으로 애수를 띤 힘찬 리듬이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감도는 듯한 악장이다. 2악장(Andante con moto)은 6개의 변주와 코다로 이루어졌고, 죽음의 유혹과 싸우는 소녀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고요한 체념마저 감돈다.

슈만이 음악의 모든 범위에서 가장 영감적인 것이라고 했던 악장이기도 하다.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과 악센트가 있는 3악장(Scherzo Allegro molto)은 매혹적이며, 론도 형식인 4악장(Presto)은 타란텔라 무곡풍으로 발랄하고 생기에 차 있어 죽음에 관한 연상이 전혀 보이지 않고 환희의 정점에 이르며 마치 죽음을 관조한 듯한 느낌이 든다.

다시 영화속으로 돌아가서 음악과 교차하여 보면, 1악장은 닥터 미란다(벤 킹슬리 분)가 죽음과 같은 고문을 하며 진술을 강요했던 모습이, 2악장에서는 파올리나가 끝임없는 잔혹한 고문속에서 죽음의 유혹속에서 버티며 살아남았던 모습이 연상된다.

파올리나와 닥터 미란다의 위치가 바뀌어 오히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행동하던 파올리나의 모습이 악센트 있는 3악장 속에서, 15년간 악몽에서 벗어난 환희의 순간이 4악장에서 느껴진다.

영화의 끝장면에 듣는 ‘죽음과소녀’는 이제 더 이상 파올리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자신을 고문했던 닥터 미란다에게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아 진심어린 참회의 고백을 받고 용서함으로써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눌러왔던 질곡에서 벗어난 듯하다. 개봉 당시 영화의 제목이 한국에서 “진실”이였던 점을 보면 가해자 본인의 행동에 대한 참회와 이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만이 과거의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됨을 상징하는 듯하다.

Schubert Death and the Maiden (1/3)

Schubert Death and the Maiden (2/3)

Schubert Death and the Maiden (3/3)

Schubert: String Quartet No. 14 "Death and The Mai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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