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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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새해 들어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등에 대해서 세이프 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포함한 12개국의 철강제품에 50%가 넘는 관세를 매긴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번 규제 대상에서 캐나다와 일본, 독일, 대만 등은 빠지고 유독 한국만 포함됐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력이 거셀 것이라고 예상됐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게 없을 법도 하다. 이미 지난해부터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미FTA에 대한 재협상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우리 정치권에서 때 아닌 '한미동맹'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미국이 경제 보복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친북정권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 이번에 세탁기 세이프가드 문제라든지 철강 문제라든지, 또 한미FTA 문제라든지…”라면서 문재인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이어서 “철 지난 친북정책으로 나라 경제까지 나락으로 끌고 가는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지 않느냐”고 비난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한미동맹 관계가 여러 군데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균열이 발생하고, 신뢰가 멀어지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핵과 미사일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굳건한 한미동맹 위에서 제재와 압박을 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한미관계 신뢰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을 위한 대화와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공격했다.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미국의 잇단 통상압박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인가? 2011년에 미국 월풀사가 한국산 세탁기에 관세를 인상해야 한다며 제소했고, 2012년에 미국 정부가 반덤핑 관세 판정을 한 바 있다. 지난해 월풀사가 세이프가드를 다시 청원했고, 올해 1월에 미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철강 역시 마찬가지다. 2013년부터 미국 철강업계에서 제소가 이어졌고, 2016년 한 해에만 한국산 철강에 대해 7건의 반덤핑 관세가 매겨졌다. 둘 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 벌어진 일이다. 철강을 겨냥한 이번 권고안도 지난해 4월 문 정부 출범 전에 트럼프의 지시로 시작된 일이다.

사실관계는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미국의 통상압력과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실증적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 명색이 제1, 제2 야당의 대표란 정치인들의 발언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정치 공세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니 더 기대할 것이 뭐가 있을까만, 미국의 통상압력이 한미동맹 균열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야당의 주장은 전형적인 흑색선전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에 대해서는 끽소리도 못하는 야당의 태도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얼토당토않은 비판과 공격까지 마구 해대는 야당이 정작 우리나라에게 통상압력을 들이대는 미국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고 있다. 이들 야당이 대체 어느 나라의 어느 국민을 대변하는 정당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한미동맹은 절대적인 가치이며 신성불가침의 성역인양 치부된다.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망령을 연상케 한다. 재조지은은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이 침략해오자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조선이 명의 구원으로 기사회생 할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임진왜란 후 조선의 선조와 지배층을 지배한 통념이다. “미국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는 재조지은의 믿음이 한미동맹의 사상적 근원이다.

2006년부터 10년간 한국이 도입한 미제 무기는 36조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의 미국산 무기 수입 국가다. 차세대 전투기(FX) 사업 등 다른 미제 무기 도입을 위해서도 10조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때 우리 정부는 미국산 무기 8조원 구매의 큰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왜 미국이 막대한 돈을 들여 부자 나라인 한국을 지켜줘야 하느냐"고 불만이지만, 우리나라는 연간 9500억 원의 분담금을 내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 조성에만 8조9000억 원을 썼다. 한미동맹의 값비싼 댓가다.

 
 

우리나라는 한미동맹에 따른 온갖 비용을 다 지불하면서도 감사의 우대는커녕 만만한 호구 취급을 당하는 신세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외교무대에서 재조지은의 은혜를 갚겠다고 70년 넘게 결초보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이제 한미동맹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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