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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를 위한 한 그루 나무의 삶…후회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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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국공무원노조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직장협의회 북구지부 첫 회장을 역임하셨다. 먼저 본인 소개부터 하자면.

▲ 나는 시골 출신으로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 농사일을 돕다가 졸업한 해인 1977년 5월 당시 18세에 지방공무원 5급 을류(현 9급)시험에 합격하여 강천산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군 팔덕면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다. 1991년 말에 광주 북구청으로 전입하게 되었다.

북구청 전입 후 1997년말 IMF로 인한 공직사회 구조조정과 급여 동결로 인하여 공직사회가 어려웠던 시기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고, 국제사회로부터 공무원노동기본권 허용 압력에 따라 노조 전단계인 공무원 직장협의회를 허용하게 되었다.

직장협의회 출범으로 직장의 변화는 가히 혁신적이었다. 직원들의 불만과 애로사항이 봇물처럼 터졌고, 나아가 업무개선, 하위직 인권보장 등 요구가 밀려들었다.

 

2. 공무원 해직자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해직 당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면.

▲ 나는 해직 두 번, 구속도 두 번 당했다. 지금까지 벌금도 다섯 번이나 물었고, 2015년이후 공무원연금법개악 저지 관련 건으로 3건이 광주지법에 재판 중에 있다.

직장협의회를 운영하면서 한계점이 많았다. 직장협의회는 노동3권이 없어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강제가 안되었고, 예산, 인사, 법령 관련 사항은 애초에 협의대상도 되지않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전국적인 연대가 요구되었고, 2001년 3월 24일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전공련)이 결성되었고 나는 초대 전공련 부위원장직을 맡았고 이때부터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2002년 5월에는 그동안의 전공련 부위원장 활동과 공무원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 출마하면서 창립을 주도했다는 사유로 광주광역시징계위원회에서 해직을 당했으나 소청심사를 통하여 정직으로 감경된 후 복직하여 공무원노조 활동을 하다가, 2004년 총선 관련하여 정치자유를 주장하고 민주노동당 지지·지원하는 사유로 인하여 그해 12월말 2번째 해직되었다.

 

3. 공무원노조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노조를 결성 후 136명이 해직돼 13년간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직자 원직복직에 대한 방향에 대해서 개인적 의견을 듣고 싶다.

▲ 2002년 1기 노조 창립 때에는 탄압은 거세었지만 해직자는 많지 않았고 해직 후에는 소청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모두 복직되었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정부에서는 3천여명에 달하는 공무원노조원을 징계하였고 지금도 130여명의 해직동지가 있다. 그때 민정수석이 지금의 대통령이다.

덩달아 망나니 춤을 추던 장관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집권당 후보로 시장에 출마하려고 한다. 5년전 대선기간 잠실운동장에서 5만 공무원노조 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단상에서 분명하게 약속했다.

그렇다고 복직을 애걸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얻으면 더 큰 다른 것을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급해 하지 말고 멀리보고 즐겁게 투쟁하자.

 

4. 해직자 원직복직은 공무원노조의 염원이고 반드시 이뤄내야만 한다. 하지만 해직자 내에서도 일관된 방향보다는 사사로움에 의견차이가 크다. 보다 합리적인 해결방안은 없겠는가

▲ 해직자마다 다양한 사유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현직 위주의 지도부는 해직자들과 대화를 통해 최대공약수를 도출해 내야 한다. 해직자 모두가 수긍할 만한 방안을 찾는다고 안주한다면 일부러 미루는 것 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루라도 빨리 최선은 못되더라도 차선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노동조합활동 해직자는 사회에서 취업하기가 참 어렵다. 노조에서의 금전적인 대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해직자들이 공무원노조를 마친 뒤 노후 일터를 마련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교육을 받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5. 해직자로서의 아픔은 이제 가슴에 묻고 그 동안의 공무원 노동조합은 ‘나에게 어떤 것이었나’에 답을 준다면.

▲ 공무원노동조합을 시작 할 때는 나의 어려운 한 걸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희망을 갖고 힘이들때도 잘 참아왔다.

그러나 뒤돌아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을 때는 조바심도 나고 후회 된 적도 있었다.

그러한 공허함이 한데 묶여 한때는 공황장애도 왔었다. 그러나 해직된 후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니 14만의 거대한 공무원노동조합의 숲이 보이고, 도도하게 흐르는 물줄기도 있었다. 나는 그 숲의 한그루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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