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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반복되는 역사역사 이야기
양희철(동구지부 조합원)  |  kelsid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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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3  1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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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굵기를 더해갔다. 제주도에 온 뒤 모든 것이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외따로이 섬에서 맞이하는 새해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담장너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허허로움을 더할 뿐이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했다. 이듬해 광해군의 유배지가 제주도로 변경됐다. 광해군의 떠돌이 생활은 1623년 인조반정이 발생한 때부터 시작됐다. 강화도에서 태안으로, 태안에서 강화도로, 마침내 1637년 한양에서 가장 먼 제주도로 이어졌다.

인조반정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광해군 주변은 항상 감시하는 눈초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인조반정 두 달 만에 아들과 며느리를 잃었으며, 일 년 뒤 부인 유씨마저 마음의 병으로 숨졌다. 시집간 외동딸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다. 시중을 드는 나인마저 농을 던지는가하면 언제든지 죽음의 칼날이 시시각각 그의 몸을 노렸다.

   
▲ 광해군 어진御眞

광해군은 누구보다 더 전쟁의 참상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로 전국토가 황폐화되었고, 백성들이 왜군의 조총아래 무차별 폭행당하고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처참함을 몸소 체험했었다. 때문에 명·청나라 교체기 강대국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고자 노심초사했던 그는, 실리보다 명분을 내세운 중립외교를 추구했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이상향에 치우쳤던 대다수 지배층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패망의 길로 접어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내세워 국제정세를 애써 외면했다. 결국 광해군은 반정세력들에 의해 쫓겨났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란 고통의 폭풍이 백성들을 덮쳤다.

고통은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까지 골고루 미쳤다. 하지만 고통의 강도는 그 반대다.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포위당한 인조와 위정자들은 남한산성에서 쇠락한 명나라에 대한 사대제사를 올리며 웅크리고 있을 때, 성 밖 백성들은 청나라 군대의 말발굽 아래서 인권유린은 물론이거니와 창자에 구더기만 창궐하는 육체적 고통을 극한으로 겪었다.

역설적으로 현재 우리도 광해군 시대와 비슷한 누란지세의 위기다. 북한핵문제로 촉발된 동북아시아 정세는 트럼프의 안하무인 정치로 기름에 불을 끼얹은 듯 하고, 이에 부화뇌동한 일본의 재무장을 급격히 촉발하고 있다.

   
▲ 17세기 초 동아시아 정세

문제에 대한 고민은 광해군이나 문재인 대통령이나 비슷하다.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기다. 역사를 보는 것은 과거의 발자취를 거울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경험칙을, 누란지세 위기 앞에 우리는 깊이 되새겨야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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