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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자의 눈
윤종광, 그를 현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 그가 우리 노동자와 함께 한 삶, 영원히 우리 곁에 있다.
강주용 현장기자  |  chanumul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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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0  16: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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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교육청 사무국장

지난 2017년 12월 8일 12기 민주노총 전북본부장 노병섭, 사무처장 김동규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11기 윤종광본부장은 12기 임원당선자가 결정되는 것을 보고 묵묵히 지켜보았다. 당선자 결정공고 후 이틀이 지났다. 2017년 12월 10일 22시경, 향년 57세인 그는 지긋지긋한 폐암과 함께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바람과 희망을 먼저 생각한 노동운동가는 끝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운명하기 며칠 전, 집에서 한방치료를 하고 계시는 윤종광본부장을 방문했다. 요즘 들어 힘이 없는데, 한방약을 먹고 그래도 버틸 만하다고 했다. 힘겨운 폐암과의 싸움 속에서도 눈빛만은 무엇인가를 갈망·염려하고 계셨다. 폐 손상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의 눈빛은 현장을 호령하던 그대로였다.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12기 임원들의 선거가 끝나자마자 무겁고 힘겨운 짐을 벗고 떠났다.

 

그는 1987년 현대자동차노동조합 결성 발기인으로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은 우리가 모두 잊을 수 없는 시대였다. 그 치열함 속에서 자기 가족 생계를 포기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다음해 인 1988년 현대중공업 연대투쟁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 당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싸움뿐이었다. 기나긴 죽음 같은 시대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연대투쟁과 파업뿐이었다. 그는 치열하게 현장에서 싸웠다. 그 후 현대자동차 3/4/6대 노동조합 대의원, 소위원, 교육위원들을 역임했다. 1995년 전주공장으로 전입하여 대의원, 소위원을 역임하고 2001년도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전주 지부장을 역임하였다. 2002년도부터는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본부장으로 시작하여 전북에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고 투쟁을 시작하였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과 제8/9기 수석부본장을 거쳐 2013년, 2015년 민주노총전북본부 제10기, 제11기 임원직선제 선거에서 본부장으로 당선되었다.

   
▲ 윤종광열사 추모사진

그는 민주노총전북본부장 임기동안 전체 노동자·민중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박근혜 정권의 노동법 개악 정책에 맞서 싸웠다. 열사의 투쟁은 광장에서 밝혀진 정권퇴진 촛불의 시발점이 되었다. 또한, 그는 노동 사안뿐만 아니라 교육, 평화, 여성, 생태, 인권 등 다양한 지역 사회 연대를 구축했다.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이 없는 공무원단체와 연대에도 소홀치 않았다. 친일역사교과서,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공무원의 정치후원금 문제 등도 꾸준히 연대 지원했다. 그가 옆에 있으면 단체행동권이 없는 공무원노조는 큰 힘이 되었다. 전북지역의 약자인 비정규직, 농민, 영세민, 노동자 옆에는 그가 항상 있었다. 때로는 삭발한 푸르스름한 머리로, 때로는 울부짖음으로, 때로는 우렁찬 함성으로, 때로는 묵묵하게 힘없는 노동자 곁에 있었다. 항상 그는 현장에 있었다.

 

해직 버스 기사 (고)진기승 열사가 47살의 죽음으로 해직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는 바로 삭발하고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버스 노동자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했다. 어용노조의 사슬을 끊고 인간답게 살겠다고 버스노동자들이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았을 때, 이를 엄호하는 투쟁을 했다. 당시 호남고속에서 운행 저지 투쟁 중 용역 깡패와 공권력이 살벌하게 공격하여 대오를 강제 해산시킬 때 그는 웃통을 벗어던지고 끝까지 투쟁했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다음 해인 2015년에도 노동법 개악 노사정 야합을 규탄하기 위해 다시 삭발 투쟁을 해야만 했다. 그런 그가 12기 후임 임원들이 결정되고 이틀 만에 우리들 곁을 떠났다.

   
▲ 진기승열사 투쟁

치열한 현장에서 있던 그가 폐암을 얻었다. 도로에서, 공장에서, 길거리에서 어쩌면 폐암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년 전 몸이 안 좋아 우연히 진단받은 폐암을 담담하게 받아 들인 그의 모습이 선하다. 폐암진단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좀 쉬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무슨 미련이 많았는지 끝까지 천막을 지키고 거리 노숙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했다. 뜨겁게, 현장에서,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도로에서, 항상 있던 그가 없다. 그는 떠났다. 30년에 걸친 뜨거운 노동자의 함성을 멀리하고 떠났다. 우리는 그를 보내드려야 한다. 하지만, 그의 정신과 마음은 보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노동 정신과 투쟁의 치열한 삶은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몸은 보냈지만, 그의 마음을 보내면 안 된다. 그는 떠났지만, 그는 우리 곁에 있다. 그것이 윤종광 열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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