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에게 좀 고마워하며 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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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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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조선일보> 한현우 주말부장이 쓴 ‘간장 두 종지’라는 칼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 칼럼이 매우 불편했다. 간장 한 종지에 분노하는 한 아재의 속 좁음이 불편했던 게 아니었다. 그 칼럼에서 제일 필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매식이 일상인 직장인들과 매식이 생계인 음식점 종사자들은 한상 부딪힌다. 서로 조심해야 한다. 설렁탕을 주문했고 설렁탕이 나왔는데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먹은 만큼 돈을 냈는데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이 이상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한현우 부장은 돈을 내고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너무나 이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 부장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주제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관한 경제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3대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사상가 생시몽(Saint-Simon)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성격을 ‘산업사회’라고 규정했다. 산업사회는 농경사회와 다르다. 농경사회만 해도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교역이라고 해봐야 생필품을 교환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자급자족은 불가능해졌다. 한 사회는 다양한 산업으로 세밀하게 나눠졌고, 촘촘한 분업은 삶의 기본이 됐다. 산업사회에서 구성원들은 더 이상 혼자서 살 수 없다.

옷 하나도 누군가가 대신 바느질을 해 준 옷을 입어야 하고, 밥 한 끼를 먹어도 누군가 정성스레 재배해 준 농작물을 먹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한 똥도 마음 놓고 쌀 수 없다. 우리가 배변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 정화조를 꾸준히 치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시몽은 “산업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구성원이 맡은 유기적 일 중 하나만 펑크가 나도 사회가 피곤해진다”라고 해석한다. 청소 노동자들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의 길거리는 난장판이 될 것이다. 학교에서 하루 200인분의 밥을 짓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라진다면 현대인들은 매일 도시락을 싸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산업사회에서 개인이 누리는 많은 것들은 궁극적으로 사회라는 총체적인 시스템 안에서 이뤄진다. 우리가 얻는 행복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생시몽이 바라보는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할까? 나를 대신해 그 일을 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며 사는 것이 온당할까? “나는 돈을 냈으니 그들을 무시해야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당할까? 이 차이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결정한다.

한현우 부장처럼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자들이 모이면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한다. 반면 생시몽처럼 “모두가 연결돼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 자매처럼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은 이기적이다”라고 가르치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지배 아래에서 살면서 너무 쉽게 공동체와 협동, 연대와 사랑을 잊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산업사회에서 나 혼자 살아갈 방법은 없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가 협동과 연대라는 인류의 본성을 맷돌에 넣어 갈아버렸다”고 통탄했다. 한현우가 지배하는 지금의 세상은 정말로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산업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다시 한 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서로에게 좀 고마워하며 살면 안 될까?”라는 질문 말이다.

 

▲ 2015년 11월 28일자 조선일보 문화면
▲ 2015년 11월 28일자 조선일보 문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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