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적폐청산⑥ 식량주권 말살하는 농업정책 폐기-전농 김영호 의장 인터뷰

미국 등 강대국 논리에서 벗어나 농정 틀 다시 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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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이 공업발전을 통하여 중진국이 될 수는 있으나 농업발전 없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 미국의 경제학자 쿠즈네츠

1. 농업개혁과 식량주권 수호를 위한 핵심과제 중 ‘쌀값 보장’에 대해 설명해달라.

우리는 꾸준히 1kg당 3000원을 요구해왔다. 심지어 박근혜도 대통령 후보 시절 쌀값 21만원을 공약했다. 시장개방 이전에 쌀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졌다. ‘이중곡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국가가 농민들로부터 쌀을 제값에 사서 소비자인 국민에게 싸게 파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UR(Uruguay Round 우루과이 라운드), WTO(World Trade Organization 세계무역기구),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 등을 거쳐 신자유주의 정책의 흐름에 편입되면서 농산물도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다. 1993년도 UR협상이 타결될 때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쌀만은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국은 쌀시장 개방은 10년의 유예기간을 두었고 모든 농산물은 개방되었다. 농산물 개방은 한미 FTA 이후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농업정책은 국제 WTO 협상에서 농민들에게 주는 보조금을 제한하면서 이중곡가제는 축소와 축소를 거듭하다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WTO는 농산물 가격을 국가에서 정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기초농산물가격제가 없어지게 되었다. 이런 큰 흐름 속에서 쌀값은 30년째 그 자리에 있다.

 

2. 적어도 물가상승률이라는 게 있는데 30년 전 쌀값이 그대로라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농민인구를 줄어들게 한 결정적인 배경이 아닌지...

80년대만 해도 천만 농민이라고 했다. 호미, 괭이로 농사짓는 건 아니니까 시대가 변하고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농기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농민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했다. 300만 농민이라고 하지만 250만명 정도이다. 다들 나이 들어서 귀농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농사를 짓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3. 김영록 농림수산부 장관은 쌀값 안정을 위해 벼농사 면적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쌀 자급률은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하다.

쌀 자급률은 현재 100%에서 ±@ 수준이다. 흉년이 들면 조금 부족하고 풍년이 들면 조금 남는 수준이다. 그런데 왜 쌀이 남는다고 할까요? WTO 협상 과정에서 전국 생산량 10%를 차지하는 40만 톤을 수입하기로 했다. 1994년 협상 이후 2004년과 2014년에 각각 10년 단위로 5%가 올라서 10%가 됐다. 하지만 쌀이 남는 이유는 따로 있다. 비용이 싼 미국산 쌀이 들어오면서 저소득층, 대중식당, 쌀 가공품을 미국산 쌀로 소비를 하다 보니 우리 쌀이 창고에 처박혀 있게 된 것이다. 싼 수입농산물을 수입해서 먹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논리는 농업경제와 국민의 건강을 죽이는 것이다. 30년간 유지해온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시장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 또한 농업정책만큼은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만 강대국의 논리에 무릎 꿇은 것이 아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수입산 체리를 5000원대에 먹을 수 있다고 국민들이 얼마나 좋아했는가. 결과적으로 보면 한 사람, 한 단체의 희생으로 국가 경제가 살아났다고 하면 그 당사자에게 보상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더 참고 희생하라고 하면 되겠는가.

 

4. 11월 트럼프가 방한하면 FTA 재협상을 할 것이다. 주로 철강, 자동차 산업분야에 치중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농업 쪽 재협상을 위한 전농의 대응방향은 무엇인지?

앞서 이야기했듯이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의 경제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민들의 정치·경제적인 의식이 굉장히 높아졌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박근혜를 끌어낸 시민들이다. 예전에는 국가, 정치인, 지식인층, 언론이 한국 사회를 주도했다면 이제는 시민들의 힘이 커졌고 의식이 변했다. 분단 이후 미국에 종속된 관계가 70여년이다. 이제는 그 고리를 끊고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은 전쟁광, 무기장사꾼에 불과하다. 1700만 촛불시민들이 전세계에 보여준 그 힘으로 이제는 미국과의 정치·경제·군사적 불평등한 관계를 시민들과 함께 바꿀 것이다. 그러다보면 우리쌀이 보일 것이고, 농민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쌀과 우리 농산물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5.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농어민이 대접받는 나라,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 국민 모두 건강한 대한민국’을 기치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농정의 기본 틀 전환 △농어민이 안심하고 농사짓는 나라 △먹거리가 안전한 건강한 대한민국 △여성 농어업인의 위상 제고, 미래 인력 확보 △살맛나는 농어촌 건설 △미래농업 대비 △어업인의 권익 보장 등 농어업·농어촌 7대 정책을 발표했다. 문재인정부가 후보시절 공약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전혀 이행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쌀값 21만원을 외쳤던 박근혜보다 더 못하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이 제시한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책임지는 농업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기초농산물수매제는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전체적인 틀에서 비교우위론적으로 볼 때 TV 만드는 것이 농사짓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잘못됐다. 농산물최저가격보장제, 기초농산물수매제 등은 최소한 국가가 시행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식량주권을 지켜야 하며 이러한 문제를 실천하기 위해 ‘농민헌법운동본부’를 만들었다.

 

6. ‘농민헌법’에 대해 설명해달라.

헌법 안에 농민·농업에 대한 부분이 거의 없다. 헌법 안에 國家天下之大本으로서 농업의 큰 뼈대가 없다. 농민헌법에 크게 세 가지 부분은 꼭 들어가야 한다. 첫째 농민의 권리로서 농산물최저가격 보장, 둘째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다원적 기능으로서의 가치, 셋째 식량주권 실현이다. 농산물 가격은 농민들의 노동의 대가이다. 가격결정 과정에서 농민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87년 헌법에 ‘최저임금을 법으로 보장한다’는 내용이 명시되면서 국가적 문제로 격상되었다. 스위스의 경우 농민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 자체가 농촌사회 유지와 국토 균형개발, 생태환경 조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 다양한 직불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예산을 보면 직불금의 규모로 보나 스위스의 10%로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위에 WTO협상안이 있다. 2018년 국가 전체 예산은 7% 증가했는데 농업예산은 0.8% 증가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농업홀대는 여전하기에 농민의 권리와 농업의 가치를 헌법에 담아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농업을 적극 지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농민을 중심으로 제 시민사회단체, 학계, 정당 등 40여개 단체가 모여서 운동본부 출범식을 진행했다. 앞으로 점점 더 확대될 것이라 전망하며 현재 100만 서명운동, 10억 모금 운동, 11월 전국대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7. 식량주권을 위해선 생산물 자체도 중요하지만 생산물을 만드는 종자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종자 자급율 등 관련된 사항에 대해 설명해달라.

농업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씨앗에 대한 종합적인 검증과 관리가 필요하다. UR협상 이후 종묘업체가 한곳을 제외하고 다국적기업에 다 넘어갔고 현지 종자 지급율은 50% 미만이다. 서울종묘, 흥농종묘, 중앙종묘 등등 중소 종묘회사들이 외국 유명 종묘회사인 몬산토, 신젠타, 다끼이, 누넴 등으로 인수합병 되었다. 이들에게 지급하는 종자 로열티가 어마어마하다. 예를 들어 ‘청양고추’는 1983년 중앙종묘가 개발한 품종이다. 1997년 IMF 때 멕시코계 기업에 인수합병, 2005년 미국의 몬산토로 넘어갔다. 우리가 개발한 종묘를 이제는 10년에 8000억 원의 로열티를 내야 한다. 몬산토와 파이오니어, 시젠타 3대 업체가 세계 종자시장의 31%를 점유하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농산물의 70% 가량이 외국기업에 로열티를 내고 씨앗을 사들여 재배한 것이다. 결국 GMO 수입농산물을 포함하면 식단의 2/3가 외국산 수입식품이다.

 

8. 일부 농업단체와 농협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연간 농업생산액이 한우, 과일, 화훼 등 품목별로 3~7% 감소했고 현행법상 허용되는 5만원 이하 선물세트는 값싼 외국산이 잠식하면서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의견은?

전국 농민의 숫자는 250만 명에 불과하지만 품종과 품목에 따라 수천 개의 이익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농업 전반에 대한 문제보다는 각 단체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특히 한우농가나 화훼농가의 경우 추석전 선물세트를 들먹이며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를 남발하다보니 농가 수입이 줄어들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김영란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엽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게다가 이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농업정책을 말아먹은 과거 한나라당 의원들 중심이다. 김영란법 개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9.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점은?

이전 박근혜 정권때는 의사소통 자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청산해야 할 적폐들이 널려있다. 하지만 쌀은 우리가 평생 먹을거리이며 우리는 후대에 건강한 쌀을 남겨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쌀값 몇 푼 더 받자고 청와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거나 농민대회를 하고 농민헌법운동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좀 더 농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이루어 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농민들은 제2의 전봉준투쟁에 또 다시 나설 수밖에 없다.

 

▲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40여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농민헌법운동본부 출범식을 진행했다.
▲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40여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농민헌법운동본부 출범식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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