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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주변 4개국 분석 - 첫번째 중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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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2월 바람은 차가웠다. 거센 북동풍이 머리카락을 어지럽게 헝클었고 얼음장 같은 겨울 바닷바람이 허름한 군복 상하의를 헤집고 들어와 할퀴었다. 날씨가 추우면 대기가 맑은 법인가. 샤먼(廈門)에서 배를 타면 30분정도 걸리는 타이완(臺灣)의 진먼(金門)섬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어른거렸다.

군대는 더 이상 진군하지 못했다. 사나운 원(元)나라 군사들이 지척의 강화도를 앞에 두고 60년의 시간을 허송세월했던 것처럼 파죽지세의 중화인민공화국 군대는 불과 2Km 거리밖에 되지 않는 타이완의 진먼섬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넋 놓고 쳐다볼 뿐이었다.

중국역사상 8번째로 대륙을 통일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고, 패배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은 그해 12월 타이완으로 쫓겨나 정부를 옮겼다.

마오쩌둥은 곧바로 타이완을 점령하려 했으나, 1950년 10월 한국전쟁 개입을 선택했다. 어쩌면 이러한 마오쩌둥의 전술은 내부문제를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해결하려는 일환인지 모른다. 한편으로 타이완은, 정부만 다를 뿐 자기 땅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도 있었다. 이러한 중국인의 인식은 한족 중심의 다민족통일국가론으로 응축된다. 이 말은 곧 주변국들의 땅을 모두 자기 땅으로 여기는 오만과 편협한 사고의 확대재생산이다.

그러나 한족중심의 중화사상은 허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중국이란 땅을 최초로 통일했다는 진시황도 사실 따지고 보면 한족 중심의 적통과는 거리가 멀다. 진(秦)은 대륙의 서북쪽 변방에 위치한 나라로서 오랑캐로 일컬어지던 작은 나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또한 북방유목민족인 흉노족이나 위구르족의 후예로 여겨졌다.

일반적으로 중국역사는 18개 주요 왕조교체에 의한 분열과 통일의 연속이었다. 삼황오제로부터 하(夏), 은(殷)나라 등은 가상의 상상을 바탕으로 어디까지나 국가형태가 아닌 신화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며, BC1046년 주(周)왕조가 국가의 형태를 띤 최초의 나라로 판단된다.

결국 한족중심의 중국사는 오랑캐라 치부했던 다른 민족에게 지배당한 치욕의 역사일 뿐이다. 한족이 세운 나라는 주, 한, 삼국시대(오, 촉, 위), 동진, 송, 명나라 정도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현재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56개 민족으로 구성)을 과거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본질은 다르지 않다. 다민족통일국가론을 내세워 우리의 역사인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려조차 자신들의 지방정권이었다며 남의 나라 역사마저 부정하고 편입해버리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여러 민족으로 이뤄진 미국을 미국이라 부르지 미국민족이라 부르지 않는 이치를 되새겨봐야 한다.

따라서 이웃국가들에 대해, 마치 몸집 큰 청년이 초등학생 멱살을 흔드는 격으로 오만과 방자를 난발하는 현재의 중국을 과연 진정한 강대국이라 부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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