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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선봉대가 되자![민주노총 제18기 노동자 중앙통일선봉대 체험수기]
공무원노조 장애란 광주 북구지부 사무차장  |  gnews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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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3  17: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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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년전인 2005년 대학생때 시절 청년학생 통일 선봉대를 간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노동자 통일 선봉대도 문득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전과는 달리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질 않아, 고민 끝에 이번이 기회임을 적극 피력하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고민만 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면 8월이 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엄청난 후회를 하고 있을 뻔했다. 지난 7박 8일 함께한 동지들이 지금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이 그리움이 그리움으로써 끝날 것인지,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당당하게 얼굴 들 수 있는 내가 될지는 지금부터가 시작이기에 다시금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결의를 다져본다.

8월 8일 이른 아침부터 설렜다. 전국에 많은 동지들이 함께 모인다는 생각에 약간의 소풍같은 기분으로 울산행 버스를 탔다. 평소보다 두 시간은 먼저 일찍 일어나서 며칠 집을 비울 준비를 했다.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결 장소까지 갈 때까지도 꿈인 듯 싶었다. 통일선봉대 전체 일정에 티셔츠 두 벌과 모자를 받고 나는 진짜 시작이구나 싶었다. 간단하게 발대식을 하고 교육도 듣고 7박 8일 끊임없이 듣게 될 율동 보급곡도 익히기까지 첫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역시 사람은 단체생활 속에서 성장한다고, 잘 지켜질까 우려했던 시간엄수는 두말할 것도 없고 저녁에 식사나 씻는 문제까지 척척 알아서 하는 동지들을 보면서, 첫날부터 감동이었다. 12년 전과는 또 다른 느낌에 내일부터 신나게 달릴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선봉대답게 피켓선전과 유인물 배부로 하루를 시작했다. 울산에는 공장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인 현대자동차 공장에 선전전을 진행하였는데 많은 노동자들이 출근을 위해 모여들었다. 예상외로 유인물도 잘 받아주고, 길가던 분들도 피켓 들고 모자 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어딜 가나 단체로 행동하면 튄다. 이 통통 뜀을 우리는 앞으로 6박 7일을 더 할 것이다. 아침 선전전을 하고 성주 소성리로 갔다. 사드 투쟁이 한창이지만 부끄럽게 이번이 소성리는 처음이었다. 그토록 가본다 가본다 했지만 통일 선봉대 와서야 가게 되다니.. 자신이 부끄러웠다.

산을 타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안개도 적당하게 깔리고 덥지도 않고, 물론 등산을 힘들어하는 나에게는 어느 산이든 힘들었을 테지만 이 또한 동지들과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올라가는 그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통일대행진단 청년학생들을 보면서는 발랄함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보고 순간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노동자 통선대도 아직은 젋다구... 대형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산 중턱에서 진행하였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꼭 우리의 투쟁현장이 한반도를 닮았더라는 말에 이 또한 우리의 투쟁이 잘 맞아 떨어졌는가 싶다. 우리의 투쟁 하나하나가 기사거리가 되고, 집중해서 보고 있다는 소식에 더 잘 해야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소성리 이 아름다운 곳에 사드라니... 어처구니 없는 세상이다. 힘들게 사드포대가 배치되어 있는 곳 아주 가깝게 진입하고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군인과 대치하게 되었다. 어때 긴장좀 했겠지? 앞으로 더 긴장좀 해야될 거야... 거슬리는 짓 계속하면 더 많은 동지들 데리고 올꺼거든... 소성리에는 매주 수요일 마다 수요 집회가 열린다. 마침 그날이 수요일이여서 수요 집회까지 마무리 하고 내일 다시 소성리에 올 것을 약속하고, 우리는 부산으로 출발!

부산 대도시에 맞게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의 명동을 거리 같은 곳에서 몇 시간만에 익힌 율동을 선보이고 한미동맹 70년간 얼마나 나쁜짓을 했는지 부산 시민들에게 고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피켓, 현수막, 설문지, 트럼프 분장 등 다양하게 시선을 끌 수 있는 방법으로 많은 준비를 한 듯 했다. 그렇게 이튿날이 지나갔다.

통일선봉대 삼일 째 되는날 아침 일찍 성주 소성리로 갔다. 9시부터 있을 환경영향평가 저지 투쟁 기자회견에 참석을 위해서다. 우리가 도착하기 5분전에 날씨 영향으로 평가하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못 온다고 통보했더란다. 우리가 와서 그런 것 아닐까? 어깨가 으쓱 하기도 하고 이러다가 갑자기 오늘, 내일, 모레 라도 오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도 들었다. 우리가 소성리를 벗어나서 오면? 그땐 차를 돌려 다시 오면 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많은 동지들이 있으니깐 그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였다. 소성리 주민들, 할머니, 할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셨다. 옆에서 든든하게 버텨 주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을 지킬 수 있다는거,, 다시금 느끼는 소중한 하루였다.

셋째 날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경산코발트 광산 기행이다. 이곳 또한 처음이다. 동굴 안에 엄청난 유골들이 발견된 곳이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도 유골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아직 채 발견되지 못한 유골들도 있을 것이고, 이 땅 한반도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발견되지 못한 유골들... 민간인 학살이 곳곳에 자행되었는데도 밝힐 생각보다는 역사를 왜곡하기 바쁜 이 나라의 썩은 역사 인식... 바뀌기를 바라는 것보다 바뀔 수 있도록 작은 행동이라도 보여야 할 때인 것 같다. 한편으로 이런 역사의 현장에 와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오후에는 분위기가 무거웠다. 웃을 수만은 없는 시간이었다. 어두컴컴한 동굴에 억울하게 죽어간 원한들의 한이 남아있는 듯 섬찟했다.
셋째날 마무리는 대구지역 8.15 결의대회로 하였다. 어제보다는 율동연습을 오전에 빡세게 해서 그런지 성황리에 잘 되었다. 이렇게 셋째날이 마무리 되어갔다.

넷째날은 대구지역에서 서명운동을 받는 날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시민분들께 유인물도 나눠드리고,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으로 배고파 굶어죽고, 일하다 다쳐서 죽었던 선배 노동자들에 대해 피해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였다. 대구시민은 생각 외로 서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주셨고, 이제왔냐, 반드시 해야된다는 등 자신감과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하기 전에는 머뭇거리면서 안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역시나 행동을 개시하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힘을 받은 우리는 다음 투쟁의 장소로 이동하기 전, 정들었던 전반기 참가자 동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3박4일 동지애를 느끼기에는 아쉬울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실천해주고 함께 해준 전반기 동지들과 8월 15일 서울에서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전라북도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 미군기지는 12년 전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주위에 상가들이 하나둘씩 사라진 듯한 허전함... 미군기지 앞은 그랬다. 썰렁한 듯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번화가가 아닌 사람이 싫증나서 도망이라도 간 듯한 분위기,, 미군기지 부근 마을은 환경도 오염이 되고,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정이 가지 않는 장소 미군기지...
전반기 동지들이 떠나고 전 일정에 참여하는 동지들만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기죽지 않고 우리 갈길 가듯 짧고 굵은 집회를 선보였다. 당찬 율동, 투쟁사, 구호, 힘 있는 노래, 내일부터 오는 후반기 동지들을 맞이할 준비를 그때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서울 용산역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주관하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제막식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후반기 참가 동지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전날보다 5배 이상이나 되는 동지들이 합류를 했으므로 그 얼마나 든든했겠는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제막식에서는 강제동원된 그 역사 속에 존재했던 할아버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이제는 백발이 되어 100세에 할아버지는 자기를 닮은 노동자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우리는 늦어서 죄송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큰소리로 화답했다. 강제징용 노동자 상이 이제라도 건립이 되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전국 어디든 강제동원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물고를 터서 전국적으로 내년이면 저 이북에도 건립을 한다고 하니 발맞추어 하루속히 우리 모두가 잊지 말고, 기억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을 했으면 한다.

후반기 참가 동지들과 함께 지축 자량기지로 이동을 하여 전반기 우리가 했던 교육, 발대식을 진행하였다. 그동안 우리 전일정 참가 동지들은 저녁에 실천 활동을 할 현수막 작업을 하기 위해 모였다. 많은 동지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뿔뿔이 흩어져서 서울 경기 지역에 500여장의 현수막을 달거라는 생각에 신이나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트럼프의 못된 말을 이 현수막을 통해 알게 될거라는 설레임? 그래서 그런지 문득 흥미진진함을 느꼈다. 간단하지만 혼자서는 하기 힘든 그러나 몇 백명이 되는 동지들이 함께 하기에 즐겁게 할 수 있는 실천의 시간, 후반기 첫 실천 활동으로는 안성맞춤이였다.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먼 곳이 당첨된 곳의 동지들도 늦었지만 숙소로 들어오는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을 것이다.

후반기 일정 이틀째, 이제는 안타깝지만 우리 모두가 잊지말아야 할 역사의 현장, 세월호 분향소와 기억의 교실을 방문했다. 벌써 세월호 3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직 진상규명이 되지못했고, 이제야 세월호가 올라왔다. 앞으로 할 일은 많다. 그런데 나 역시 안산은 처음 방문이었다.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보고 눈물이 자꾸 났다. 이 아이들이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돌아왔었다면 지금 20살이 넘었을 텐데,,. 아니 같이 통일 대행진단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텐데.. 손수건으로 닦아도 닦아도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살아서 돌아온 친구들은 같은반 친구의 영정사진을 들고 졸업사진을 찍었다. 생전 좋아하는 인형, 간식, 연예인 사진 등 생기 발랄한 아이들이 그것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그렇게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이 사건을 지금도 진상규명도 못하고 가만히 두고 있어야 했다.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 안된다. 그들을 보러 안산에 왔으니 뭔가를 해야 된다. ‘기억하자, 20140416’ 팔찌부터 차보았다. 이거부터 시작이려니 하고... 작은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세월호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그날따라 흥얼거리게 되었다. 앞으로 진상규명되는 날까지 함께 하리라.

오전에는 눈물을 펑펑 쏟고 오후에는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분노를 펑펑 쏟아냈다. 미군들을 위해 우리나라 경찰들이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아이러니한 나라... 한반도 땅에 미군들이 마치 자기네들 땅인양 활보하는 어처구니 없는 나라가 바로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이 죽어도 아무말 못하고, 범죄에 노출되고, 경제를 좌지우지해도 그렇게 살아왔으니 아무말도 못하는 나라가 내가 있는 이곳 대한민국이다. 알수록 화가 났다. 12년 전에는 말로만 반미반전가 노래를 흥얼거렸다면, 이제는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았다. 미제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의 힘으로 우리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을...

평택 미군지기와 용산 미군기지를 이틀 연속 방문하면서 화딱지가 나서 더더욱 큰소리로 주한미군 철거가와 반미반전가를 외쳤다. 버젓이 자기땅인 듯 지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출입 통제에 자릿세도 안내고, 가해자를 놔두고 피해자인 민중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유히 웃으며 동영상을 찍고 지나가는 미군을 보면서도 답답한 가슴만 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상한 나라... 내가 사는 이 땅 한국 밖에 없을 것이다.

환경 평가는 우리가 할 것이다. 미군 너희들이 하게끔 놔두지 않겠다는 퍼포먼스를 멋지게 성사시킨 우리는 그 기세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앞에서 노동자, 청년학생 연대 투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한 명의 동지가 연행이 되는 일이 발생되었는데 이 동지를 외롭게 둘 통일 선봉대 동지들이 아니었다. 바로 종로 경찰서앞으로 가서 연행 동지가 나올때까지 연좌농성을 벌였고, 끝내 함께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 모든 동지들은 느꼈을 것이다. 혼자는 약할지 몰라도, 단결하고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7박 8일중 마지막 저녁을 아쉬움과 추억을 상기하면서 간단하게 뒤풀이를 진행, 8월 15일 드디어 서울에서 지역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서울시청 광장으로 갔다. 비가 “8월처럼 산다”의 노래처럼 시원하게 쏟아졌다. 모자와 비옷을 벗고, 힘찬 율동도 했고, 노동자 통일 선봉대가도 불렀다. 모두들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투쟁하기 좋은 날씨였다고... 비도 시원하게 내리고, 무대 위에서 나오는 노래 가사 하나하나는 마치 18기 노동자 중앙통일선봉대만을 위한 하늘 아래 무대를 마련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짧으면 짧을 수도 있는 7박 8일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통일선봉대를 다녀왔다고 해서 모두가 자격증처럼 입증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할진데, 8월 그 뜨겁던 7박8일처럼 일 년 365일을 산다면 이 세상도 지금보다는 빠르게 바뀌지 않을까? 통일선봉대 기간에 내가 보고 느낀 것이 변화되었다면 통일선봉대 이후는 실천으로 보여줄 때인 것 같다. 지금보다 더 부지런하게 치열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18기 노동자 중앙통일선봉대를 다녀온 대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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