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제18기 노동자 중앙통일선봉대 체험수기]

고마워, 통일선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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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설레임
18기.
처음이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 매 해마다 못 갈 이유와 변명만 늘어갔다.
가보고 싶다는 말을 기억했던 노병환 지부장님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2인분을 덜컥 신청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또 차일피일 미루다 해를 넘겼을 테다.
그렇게 제18기 민주노총 중앙통일선봉대(이하 통선대) 후반기 대원이 되었다.

시작부터 땀과 눈물 범벅
더위가 가장 심한 절기 중 하나라는 ‘말복’ 다음날, 통선대 후반기가 시작되었다.
삼복 무더위 여파에 하늘색 대원복을 입고 분홍색 수건까지 목에 두르자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났다. 단체복의 위력 때문인가, 선봉대 이름 때문인가, 통선대원 중 그늘을 찾는 이가 하나도 없다. 대원들 속에 있으니 나름 의젓한 기분이다.

첫 투쟁일정은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이었다.
작년 일본 단바망간 광산에 처음 세워진 후 두 번째이자 국내 최초다.
용산역은 일제강점기 시절 소위 ‘인간창고’로 불리던 곳으로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갔던 집결지라 한다.
부인의 부축을 받고 제막식에 참석한 김한수 어르신(100세)은 나가사키 조선소에 강제징집된 피해자셨다. “참혹했으나 다행히 살아 돌아왔다”고 말문을 연 어르신은 “어째서 일본은 사죄한 번 하지 않는 것인지, 어째서 우리나라는 일본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인지, 우리가 다 죽기라도 바라는 것인지”라고 한탄하시며, “왜 북쪽 내 땅은 분단되어 갈 수 없는가, 도대체 누가 통일을 막는 건가”라며 사자후를 토하셨다.
자신의 젊은 모습을 마주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여기저기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김한수 어르신 앞에 300여명의 통일대원들은 “너무 늦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를 외쳤다.

‘역사를 망각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는 섬뜩한 문구가 계속 뇌리를 스친다.
일상에 매몰되어 작은 실천보다 궁색한 구실이 더 많은 나에게, 이 땅 무수한 김한수 할아버지들, 이제는 돌아가신 하상숙 할머니들을 대하려니 가슴이 욱신욱신 뻐근하다.  
모자 속 헝클어진 머리카락부터 얼굴, 목줄기까지 계속 흘러내리는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에 범벅되어 짠 내가 났다.

잊기 힘든 기억 4·4.
4·4. 통선대(후반기) 4중대 4소대 약자다.
공무원노조 대원들로만 구성된 중대가 4중대다. 그 중 내가 속한 소대는 4소대.
중대·소대별로 서로 인사를 마치고, 다들 하기 싫어하는 소대장과 생활주체를 뽑는 시간.
명색이 선봉대라도 이것만큼은 “저요” 손을 드는 사람은 없다. 이때는 최대한 소대원들과 눈 맞추지 말고 고개도 들지 말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손가락 지명. 뜻밖의 경합이 발생했다.
손가락 경선으로 최성호(부산 중구지부장)대원 동지가 4소대 소대장으로, 신동영(부산 동구 인권증진부장) 동지가 생활주체로 뽑혔다.
최성호 소대장 동지의 능수능란한 지도력으로 4소대원들은 모두 ‘전 대원의 간부화’에 동참했다.
교육주체는 정내인(광주 북구 지부장) 대원, 문예주체1은 장애란(광주 북구 사무차장) 대원, 구호주체는 안동혁(서울 서초 부지부장) 대원, 규율주체(인원체크)1은 김광준(법원 의정부 지부장) 대원, 규율주체2는 김현웅(김광준 자) 대원, 생활주체2는 김정섭(부산 동구 총무부장)대원, 투쟁주체는 이복규(충북본부 조직부장) 대원, 나도 문예주체2라는 직책을 받고 장애란 동지를 보좌해야 했지만, 심한 몸치소속으로 문예주체2 역할은커녕 다른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율동을 익혀야만 했다.

3박4일 일정은 진작 끝났는데, 아직도 4중대 대장님의 목소리와 4소대 대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지역통선대 일정을 마치고 중앙통선대까지 결합한 이명화(전남 곡성지부장) 대원은 특유의 발랄함과 적극성으로 4소대 부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소대장 버금가는 모범적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4소대 규율주체2 김현웅 대원은 10살의 나이를 잊을 만큼 늠름했다. 우리는 그를 ‘웅’동지, ‘웅’대원이라 불렀다. 4중대의 마스코트이기도 했지만, 4소대의 자랑이기도 했다.
새벽 1시가 넘는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동안 피곤한 내색을 전혀 비치지 않았던 ‘웅’ 대원은 마지막 날 정말 힘들었던지 코피까지 쏟으면서 끝까지 우리와 함께 했다.
그 뿐 아니라 어른들 눈에 희한했던지 ‘웅’ 대원을 만난 대원들 족족 “어떻게 선봉대에 왔냐, 힘들지는 않냐”며 인터뷰를 해댔다. ‘웅’대원은 “여기 오면 아빠가 키 크고 어른이 된다고 해서 왔다. 힘들지 않다”며 똑같은 질문에 하나하나 친절히 답해주기까지 했다. 그 정도 되니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짧은 3박 4일, 긴 여운~ 중독성 강한 통선대

3박4일 후반기 투쟁은 예상보다 짧고 굵었다.
세월호 분향, 평택 캠프험프리스 철수투쟁,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 즉각 사과 및 원상회복 촉구 미국 규탄대회, 주한미대사관앞 세종대왕상에서 청년들이 벌인 ‘한반도 전쟁위기 고조, 트럼프 미 대통령 규탄’ 기습시위, 기습시위 중 통선대원 연행과 연행대원의 석방투쟁, 15일 통일노동자대회와 범국민대회까지 곱씹어보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실천투쟁이 없었다.
특히 15일은 엄청난 장대비가 쏟아졌다. 어찌 통선대가 우산을 들 수 있으랴, 속옷까지 모두 젖은 채 오들오들 떨며 대회를 마치고 나니, ‘웅’ 대원 말처럼 나도 좀 키가 큰 느낌이다.

3박4일 동안 찬 바닥에 누워 잠을 설쳐서 인지, 통선대 끝나고 몇일 동안 여독 때문인가 중독때문인가 현실감이 없다.
통선대는 노동조합 현안문제에만 경주마처럼 매몰되어 있던 나에게 세상을 돌아보게 해 준 시간이었다. 눈가면(차안대)을 쓰고 앞만 달리는 경주마가 눈가면을 걷어낸 기분이다.

대원들 중에는 적게는 2번, 많게는 10번까지 통선대에 참여했다 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통선대는 중독이라 한다.
나태하고 관성에 빠질 때, 지치고 힘들 때, 그만 두고 싶을 때, 그 때마다 통선대에 참가해 일상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노동운동을 해나갈 힘을 키운다고 했다.
어떤 대원은 그 힘으로 최소 석 달을 견딘다 하고 어떤 대원은 1년을 견딘다고도 했다.
현장에 돌아오니 다시 몸과 마음이 바쁘다. 그러나 통선대 전의 나와 후의 나는 조금 다르다. 몸과 마음이 바빠도 ‘노동자통일선봉대’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바쁜 현장에서 틈틈이 숨을 고르고 제18기 민주노총 중앙통일선봉대로서, 새 역사 개척하는 통일전사로 우뚝 서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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