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서평

"인권 탄압의 공범" 사법부 오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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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필자인 한홍구교수가 한겨레에 연재한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보고서의 「사법편」에 기초하고 있다.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의 부당한 개입에 사법부가 맥없이 굴복하는 모습으로 일견 피해자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결국 사법부도 국민 인권을 탄압했던 가해자였다.

국가정보기관에 의한 밀실 고문수사와 간첩조작 그리고 사법부의 판결. 사법부 스스로 청산해야 할 회한과 오욕의 역사이다.

책에는 수많은 과거사 사건, 특히 조작간첩 사건들이 재심을 기다리고 있음을 기술한다. 그 중 ‘김제가족간첩단사건’은 최근 재심을 통해 34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故 최을호 씨는 사형이 집행되었다. 34년 만의 억울함을 푼 아버지의 묘소에 무죄판결문을 들고 제를 올리러 간 그의 장남은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여러 가지 자료를 검토하고 증언을 살펴본 결과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이 인정되고 고문에 의한 진술조서와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는 간첩활동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피해자들을 고문한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목사가 되어 있고 당시 담당 검사였던 서울지검 공안부 정형근은 한때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1991년 당시 열사 정국에서의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가 재심 끝에 26년 만의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다. 2012년 대법원의 재심이 개시됐고, 2014년 2월13일 재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혐의·무죄로 재판결한 사항이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사법 역사상 치욕의 사법살인으로 기록된다. 그해 4월 8일 대법원은 도예종 등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고 국방부는 재판 종료 18시간 만에 기습적인 사형을 집행했다. 공소장에는 ‘인혁당 재건위’라는 문구 자체가 없었고 유일한 증거는 ‘피고의 자백’이었다. 대법원의 사형확정 판결 근거는 피고의 ‘공소사실 시인’이 기록된 공판조서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 공판조서는 재판 도중 ‘부인’에서 ‘시인’으로 변조되었다고 한다.

정치적 희생양에 대한 공작정치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으로 사면초가 상태로 내몰린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을 통해 ‘내란음모사건’을 떠뜨린다. 유일한 증거는 조작으로 얼룩진 ‘녹취록’ 하나였지만 영혼 없는 사법부는 결국 정권의 손을 들어줬다. 1980년 신군부세력이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 20여 명에 대해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한 것과 무엇이 다른 건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 무죄를 받았듯이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또한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걸어온 사법부, 스스로 과거를 반성하고 개혁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오욕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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