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렇게 읽었습니다 <로봇 시대, 인간의 일>

로봇, 인류에게 선물이 될 것인가? 재앙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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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는 세금 받아먹고 일하면서, 당신 태도가 뭐야?”

민원 업무를 처리하면서 이런 태도로 담당 직원을 곤혹스럽게 하는 주민은 전체 방문 주민의 1% 정도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원처리 직원은 잠재적 ‘진상 민원’에 대한 공포를 갖는다. 왜 그럴까?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근로자들은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처리로 고객을 응대하고 싶다. 그러나 정작 직원을 찾는 고객들은 업무처리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한다. 그 기대는 고객의 하소연, 푸념, 사연 등으로 이어진다. 즉, 주변에 자신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업무’ 때문에 만난 직원에게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감동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고객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까? 로봇시대 인간의 일에서는 일라이자 프로그램 사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설명한다. 이 프로그램은 상담 받는 사람의 말을 되받아 반복하면서 적절하게 공감하는 어투로 반응을 하는 단순한 수준의 자동 채팅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그의 말을 되받으면서 적절하게 공감하는 시늉만 했을 뿐인데, 상담을 받은 사람들은 기계인 줄 모르고 대화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도올 선생은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일자리 문제라 주장한 바 있다. 도로 통행료 징수가 하이패스로, 전철요금 징수 방식이 교통카드로 바뀌면서 없어진 일자리. 그래서 늘어나게 된 일자리. 기술혁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러한 사회 변화는 학창시절 학위취득을 위해 했던 공 부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으로 사회가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예측하게 한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하고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가정을 꾸리던 생애주기별로 수행했던 과업이 질적으로 변화할 지점에 처하면서 일반적인 삶의 패러다임이 전면적으로 재편될 기로에 놓인 것이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지면서, 인공지능은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로봇시대 인간의 일은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만의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례를 통해 분야별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도덕의 가치, 언어의 기능, 교육의 역할, 일자리의 변화, 여가의 확보, 인간 관계의 본질, 과학발전의 범위 끝으로 인간의 핵심 경쟁력에 대해 분야별로 짚어보고 있다. 언어는 사고가 표출되는 인간의 정신작용이며, 단어나 문장을 옮기는 것은 하나의 문화를 또 다른 문화로 옮기는 것이 된다. 기계 번역의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외국어를 배워야 할 것인가. 이는 인간에게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또한, 네트워크화 된 디지털 환경에서 어떠한 명문대 졸업장도 과거처럼 평생직업과 전문성을 담보해 줄 수 없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단축되면서 나날이 새로워지는 첨단 지식을 학습하기 위해 새로운 학위를 추가로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교육이 수행해야 하는 좀 더 본질적인 기능과 지속 가능한 교육의 가치는 무엇인가? 특히, 이 책을 통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과학기술이 인간의 번영을 위한 씨앗이 되도록 토양을 다져야 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 토양이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이룩했던 차원을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개인의 도덕 수준 및 사회적 합의 등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교통사고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 하는 지점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일반화 된다던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벌어질 대량 실업 사태를 자본의 논리에 맡기기보다 더불어 살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극복해 간다던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발달된 문명이 우리에게 정말 행복한 미래를 선물할 것인가? 요론트 부족의 비극이 주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9세기까지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았다. 바깥세상과 교류가 거의 없어 19세기까지 석기시대에 머 물러 있었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관습대로 살아가던 부족이었다. 그동안 이들 부족의 남자들은 돌을 얻기 위해 다른 부족과 교류를 하면서, 돌도끼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손잡이용 나무를 비롯한 재료들을 확보해 오랜 수련기간을 거쳐 돌도끼를 만들어 사용 했다. 남자들만 만들 수 있는 돌도끼를 제작하는 것에서 기반한 이 부족 고유의 문화였다. 그런데 20세기 서구에서 온 선교사들이 이 부족들과 친해지기 위해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여성들에게 쇠도끼를 선물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요론트 부족의 사람들은 쇠도끼를 얻기 위해 여성들은 몸을 팔고, 남성들은 가족을 넘겼다. 이 부족의 공동체는 그렇게 붕괴되었다. 인류가 돌도끼에서 쇠도끼를 사용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쇠도끼를 ‘선물’을 받은 것이 이 부족에게는 재앙이 된 셈이다. 과연 4차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대한민국에, 조직에, 나에게 재앙이 될 것인가? 선물이 될 것인가? 어쩌면 기술발전은 가진 자에게는 선물이, 그렇지 못한 측에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런데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 되는 사회가 가져오는 갈등과 분열이 결국 모두의 불행으로 작용하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렇게 우둔하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무한경쟁이 보편화 되면서 경험한 시행착오를 우리 세대는 기억한다. 철학과 문화예술의 전성기였던 그리스 로마 시대의 경우 노예제도라는 계급사회가 지배계급의 여유로운 삶을 향유하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로봇이 인간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혁명적인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기술발전이라는 씨앗이 개인의 성숙과 집단 지성의 성장 그리고 정치 발전이라는 토대 아래 꽃 피운다면 우리도 우리 세대 혹은 다음 세대쯤에는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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