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노조, “토요근무 폐지와 정규집배인력 4,500명 증원해야”

장시간 노동, 부족한 인력 … 집배원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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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12월 31일 경기도 가평우체국 소속 김 아무개 집배원이 ‘토요 택배’를 배달하던 중 갑자기 빌라 계단에서 쓰러졌다. 빌라 주민이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김씨는 끝내 사망했다.

# 올해 2월 초, 충남 아산 영인우체국에서 근무하던 40대 집배원 조 아무개 씨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가 출근 하지 않은 채 연락이 두절되자 동료들이 119와 함께 그의 원룸을 찾았으나 이미 조씨는 싸늘한 시신이 된 후였다. 조씨는 사망 전날인 일요일에도 출근해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느라 오후 11시쯤 퇴근했다고 한다. 설 연휴 동안 다리를 다치거나 아픈 집배원으로 결원이 생긴 상태라 조씨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고.

# 지난 4월엔 충남 아산우체국 소속 40대 곽 아무개 집배원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3살, 2살의 두 딸을 둔 가장인 그는 평소 건강에 아무 이상에 없었다고 한다. 사망하기 전 곽씨는 하루 1,300통에 달하는 우편물을 배달해야 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관련 우편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평소보다 300통이 넘는 양의 우편물을 배달해야 해 가족들은 당시 그가 주말조차 쉬지 못했다고 전했다.

# 지난 6일, 집배원 원 아무개 씨가 자신이 일하는 경기도 안양우체국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휴가 중이었던 그는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이틀만에 숨졌다. 원씨는 유서 등을 남기지 않아 그의 분신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경력 21년차의 ‘베테랑’인 그는 최근 배달구역 변경 등 근무에 대해 지인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집배원들이 죽어가고 있다. 집배원들의 ‘돌연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해 사망한 6명의 집배원 중 5명은 모두 길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집배 노조는 지난 5년 동안 80여 명의 집배원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이들의 사망원인은 뇌심혈관질환 15명, 자살 15명, 근무 중 교통사고 8명, 암 2명 등이다.

집배 노조는 ‘과도한 업무량’과 ‘장시간 노동’을 이들의 ‘진짜’ 사망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분신한 안양우체국의 원씨의 경우도 노조는 ‘과로자살’에 해당한다며 “안양지역은 신도시 조성 등으로 인해 물량이 급증했는데도 적정인원이 증원되지 않아 업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원씨의 분신 사건과 관련해 지난 10일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명예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국민진상조사위를 구성하고 정규집배인력 4500명을 늘리라”고 요구했다.

▲ 노동자운동연구소 ‘집배원 노동자의 초장시간노동 실태’에서
▲ 노동자운동연구소 ‘집배원 노동자의 초장시간노동 실태’에서

지난 해 7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전국집배원 초과근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배노동자들은 주당 평균 55.9시간, 연 평균 2,888시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노동자들보다 매주 12시간을, 1년이면 621시간 더 장기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 2015년 9월 재개된 토요근무제가 집배원들의 업무 강도와 장시간 노동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우편물 감소로 인한 적자 누적과 민원인들의 불만이 있다며 2014년 7월 중단했던 토요 배달을 1년 2개월만에 재개했다.

지난 6월 대전 MBC와 인터뷰한 을지대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수영 교수는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집배원들 같은 경우 고혈압, 당뇨, 주의력 부족 등 생리의 리듬이 혼란스럽게 되고 점차 이런 증상이 악화되면서 결국 뇌혈관이나 심장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질환이 증가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과도한 업무가 뇌심혈관계 사망률을 높인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주당 65시간 이상 근무하면 뇌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도가 업무 때문에 증가한다’는 내부규정을 만들어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주장과 달리 우정사업본부는 ‘업무과다에 따른 과로사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며 ‘개인의 질병’으로 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기준 집배원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7.8시간이고 연평균 2,531시간이라며 근로기준법이 정한 한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6월 18일 서울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전국 우정노동자 총력 결의대회. 사진 = 전국집배노동조합
▲ 6월 18일 서울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전국 우정노동자 총력 결의대회. 사진 = 전국집배노동조합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을 실제와 다르게 은폐하고 있다”며 “만약 우정사업본부가 노동자들에게 47.8시간 만큼만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라면 불법적 노동착취”라고 지적했다.

집배원 과로사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자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5월 노사합의로 100명의 우편원과 50명의 집배 인력을 충원했지만 집배노조가 요구하는 4,500명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김동근 연구원도 대전MBC와의 인터뷰에서 “대략 현재 인원의 20~30%, 약 6천여명 정도 충원돼야 집배원 노동자가 일반적 노동상황으로 갈 수 있다”며 “우정사업본부가 우편부문에서는 흑자를 보지 못하지만 예금보험 부문에서 막대한 흑자를 거두고 있다. 이걸 사용하면 이 정도의 인력충원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일 집배원 체험을 하면서 “집배원은 장시간 노동에 초과근무수당도 받지 않는 무료노동까지 하고 있어 순직자가 많이 발생한다”며 “적절한 재조정을 통해 노동강도를 줄여나가는 방법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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