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 제천지부 노래패 '청풍소리' 탐방

노래를 통해 삶을 배우고 사회참여 의식을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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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어느 저녁, 충청북도 제천시청 직원들 대부분이 퇴근한 시청건물에 맑고 시원한 바람 같은 노래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바리톤 화음이 어우러진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익숙한 노래가 달리 들린다.
  12일, 제천지부 노래패 청풍소리를 만났다. 제천시 도서관 겸 지부사무실로 쓰이는 시청 5층의 한 사무실에 하루의 노동을 마친 노래패 패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연습 시작 전 김밥 한 줄로 저녁을 때우며 짧은 담소를 나눈다.
  번듯한 연습실도 아닌 지부 사무실에 모여, 흔한 키보드 하나 갖추지 못했지만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자 모두들 진지했다. 물론 노래 중간중간 종종 웃음이 터져나왔다. 누군가 화음을 잘못 넣거나 들어가는 부분을 놓치는 실수가 나오면 으레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또 노래를 시작하면 모두들 진지해졌다. 노래실력은 고르지 않지만 노래를 부를 때의 ‘열심’ 만큼은 한사람한사람이 다르지 않았다.
  이날 청풍소리의 연습을 보면서 받은 인상은 ‘노래패’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었다. 퇴근 후, 하루의 노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지부사무실에 모여 노동가요를 진지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패 ‘청풍소리’가 가진 힘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은 이날의 연습뿐 아니라 패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 공무원노조 제천지부 노래패 '청풍소리'. 청풍소리는 3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지부 간부와 평조합원, 상근활동가가 어우러져 시원한 바람 같은 화음을 만들어낸다.
▲ 공무원노조 제천지부 노래패 '청풍소리'. 청풍소리는 3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지부 간부와 평조합원, 상근활동가가 어우러져 시원한 바람 같은 화음을 만들어낸다.

노래패 활동이 삶의 ‘활력소’로, 노동조합에 ‘생기’를 불어넣다

“2013년 6월 서울 집회에서 강원본부 동해시지부 노래패 <동해와바다> 공연을 보면서 우리 지부에도 노래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몇 명이 결의해 바로 단원을 모집하고 노래패를 결성했다. 그해 7월 지부 창립기념식 때가 첫 무대였다”

청풍소리 결성을 주도했던 멤버 중 한 사람인 최중태 사무국장의 말이다. 노래패 이름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으로 불리는 제천을 떠올리게 하는 ‘청풍소리’로 정했다. 제천지부 부지부장인 김유정 패장은 “청풍소리는 누가 시켜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노조 활동을 하면서 우리 안에 노래패가 생기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겨나 자연스럽게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한 달에 두 번 모이지만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매번 연습에 참여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연습에 참여하는 이유는 3년 전 노래패에 가입한 장재훈 패원의 말처럼 “노래패 활동이 즐겁고 재밌”기 때문이다. 충북본부 노래패 ‘처음처럼’ 패원으로 활동하다 자연스레 결합한 김순희 사무차장도 “직장생활 하는 데 큰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청풍소리는 지부 총회나 체육대회 등 내부 행사뿐 아니라 지역 무대에서도 곧잘 공연한다. 제천 지역 세월호 추모제 1주기부터 3주기까지 모두 추모 공연을 펼쳤다. 지난 3.25 공무원노동자총궐기에서는 공무원노조 문예패 연합으로 대회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노래패 공연 중에서도 “망했던 공연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김진한 패원은 “대학 시절엔 노찾사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사회생활하면서 노동가요를 접할 기회가 없다가 이렇게 노래패 활동을 하니까 옛날 추억도 생각나고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 패원의 말처럼 청풍소리 패원들은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공무원노조의 자타 공인 ‘미남’인 권범수 지부장을 비롯해 ‘비주얼 담당’이라는 김진한 패원까지 모두들 ‘동안’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날 저녁 10시가 넘게 계속된 연습 동안 지부사무실 자리를 꼬박 지킨 권범수 지부장은 청풍소리가 “지부 전체적인 분위기를 밝게 하고 조직을 활력있게 한다”며 “함께 노래 부르면서 웃고 떠들고 그러면서 서로서로 끈끈해지고 친해진다. 그게 노동조합의 힘을 강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노래패가 그 구성원 한 사람한사람에게는 생활의 활력소가 될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도 활기를 주어 조직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 상단 왼쪽부터 김동수, 최중태 패원, 오경희 문화부장. 가운데 왼쪽부터 김유정 패장, 장재훈, 김주용 패원. 하단 왼쪽부터 권범수 지부장, 김순희 사무차장, 김진한 패원
▲ 상단 왼쪽부터 김동수, 최중태 패원, 오경희 문화부장. 가운데 왼쪽부터 김유정 패장, 장재훈, 김주용 패원. 하단 왼쪽부터 권범수 지부장, 김순희 사무차장, 김진한 패원

민중가요, 노동가요 통해 배우는 ‘삶의 의미’ 그리고 사회 참여

청풍소리 패원들은 노래패 활동이 ‘즐거워서’, 이 날 또다른 연습곡이었던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의 제목처럼 ‘자발적’으로 노래패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노래패 활동은 이들에게 단순히 ‘즐거움’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패원 중 가장 젊은 김동수 패원은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분들과 함께 노래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노동조합을 접하게 되는 기회가 더 많아졌고 관심도도 훨씬 높아졌다”며 “문예 활동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노동조합의 역할이나 의미를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장재훈 패원도 처음엔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애초에 노동운동에 대해 관심은 크게 없이 사람들과 같이 노래부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하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래패 강습을 위해 조합 중앙에서 한 달에 한번 제천지부를 방문하는 오경희 문화부장은 새로운 노래를 연습할 때마다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과 사회적 의미에 대해 알려준다. 김순희 사무차장은 “투쟁가요 한 곡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배우면서 노동운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며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면서 하니까 더 의미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한 패원도 “노동가요가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우리 삶을 위한 노래라고 생각하니 그런 느낌이 별로 없다”며 “어차피 우리 삶이 투쟁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김유정 패장은 “노래패를 통해 노동가요,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노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그러면서 사회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며 노래패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제천지부 6기 지부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평조합원으로 돌아가 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주용 패원은 노래와 문화가 갖는 힘, 노동조합에서의 문화 사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래패를 통해 내가 변하고 주변의 사람들도 같이 변할 수 있고, 노래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공유하고 시민들과 교감할 수 있다”며 “문화사업이 조합원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공감하는 매개체가 되고 노조 전체 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김 패원은 따라서 노동조합이 “문화활동에 대한 이해와 지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경희 문화부장은 “청풍소리는 패원들이 공무원 노동자로서의 자기각성이 높고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이 많아 지역 활동과 늘 함께 하고 있다”며 “또한 간부보다는 조합원이 많다 보니 지부차원에서 볼 때도 활력소가 된다”고 평했다.

어느 모임이든 즐거움과 보람, 두 가지 중 하나가 빠진다면 오래 유지될 수 없다. 노래패 활동을 통해 이 둘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청풍소리의 힘이었다. 노래패 활동을 통해 이 둘을 함께 경험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청풍소리의 힘이 아닐까.

▲ 청풍소리 패원들은 노동가요를 함께 부르며 노동조합에 대한 더큰 관심과 사회 참여 활동을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 청풍소리 패원들은 노동가요를 함께 부르며 노동조합에 대한 더큰 관심과 사회 참여 활동을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소모임 활동은 노동조합의 미래다

청풍소리에게도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 있다. 지속적으로 청풍소리를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는 점과 패원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최중태 사무국장은 “아무래도 지역이다 보니 노동가요를 전문적으로 가르쳐 줄 분을 찾기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도 많지 않고 레코드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한 달에 한번이지만 서울에서 제천까지 내려와 강습하는 오경희 문화부장의 역할이 크다.

김진한 패원은 “우리끼리 연습할 때는 실수도 많고 공연에서 망칠 때도 많았는데 올초부터 오경희 부장이 내려오면서 연습이 체계를 잡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담처럼 오 부장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권 지부장도 “멀리서 여기까지 와 주는 오 부장이 청풍소리 연습에 큰 동기를 부여한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신입 패원을 늘리는 것도 숙제다. 현재 육아휴직 중인 이진영 패원까지 청풍소리 멤버는 9명이다. 청풍소리가 “노동조합뿐 아니라 지역의 열악한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에도 보탬이 되는 노래패가 되길 바란다”는 권 지부장은 “계속 패원을 늘려가면서 청풍소리가 후배를 양성해 ‘지속가능한’ 노래패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청풍소리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권범수 지부장은 멤버로서 매달 꼬박꼬박 회비를 내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는 패원으로 활동하지는 않는다. 소모임 활동이 간부보다는 조합원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권 지부장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어떤 소모임이든 지부 간부보다는 평조합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그래야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도 노동조합 문턱이 높지 않다고 인식하고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모임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는 권 지부장은 6월 초 ‘2030 기획단’을 조직한 데 이어 민중행정 동아리와 같은 정책 분야를 고민하는 소모임 결성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노동조합에서의 소모임은 조직 강화 역할을 한다”며 앞으로도 조합원들이 다양한 소모임을 결성해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쓰겠다고 밝혔다.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소통을 중요시하는 권 지부장의 태도는 청풍소리뿐 아니라 제천지부 전체 분위기에 반영된 듯 보였다.

청풍소리와 제천지부가 공무원노조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그들의 밝고 유쾌한 기운을 널리 전파하며 발전해 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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