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번진 민주함성…2017년 촛불로 다시 승화

6월 항쟁, 역사적 의미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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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 본부에서 고문 끝에 죽음을 맞이한 청년 박종철이 있다.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문치사사건은 당국자의 궤변으로 더욱 활활 타오르게 된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고문으로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 몬 군사정권의 횡포는 끝을 항해 치닫는다.

1987년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승훈 신부는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은 축소 · 은폐· 조작된 것이며 전두환정부는 국민을 속였다." 고 밝힌다. 이를 기점으로 1987년 5월 27일, 야당·종교계·재야단체 등 2,191명이 참여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전국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국민 저항은 무서운 기세로 독재의 턱밑까지 이르게 된다.

그 길에서 민주화의 문을 여는 또 한 청년의 죽음에 세상이 발칵 뒤집힌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이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고 독재정권의 몰락은 촌각을 다투게 된다.

1987년 6월 10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리던 날,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가 전국 18개 도시, 시민 24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다.

그리고 5일 간의 명동성당 농성투쟁과 학생뿐만 아니라 넥타이 부대까지 참여한 대규모 민주화 투쟁은 6월 18일에 이르러 150만여 명이 넘는 시민들의 참여로 민주화 투쟁의 열기는 계속된다.

6월 26일 국민평화 대행진에는 전국 34개 도시와 4개 군 2백여 만명이 참여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직선제 개헌 특별선언"으로 마침내 독재의 어둠을 몰아낸다. 1987년 6월 마침내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 된다.

2007년 5월 2일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뒤에야 6·10 민주항쟁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다. 6월, 가슴으로 되새기는 기억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꾼다.

2017년 차가운 거리에서 촛불은 다시 타올랐다. 그리고 또다시 민중의 힘으로 부정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87년 6월은 2017년 촛불로 승화하여 깨어 있는 민중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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