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함께 14호> 역사이야기

투표권은 끊임없는 투쟁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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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동구지부 조합원)

▲ 1913년 영국 더비경마장에서 말발굽에 치인 에밀리 데이비슨.
▲ 1913년 영국 더비경마장에서 말발굽에 치인 에밀리 데이비슨.

세상엔 당연한 것이 없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들이쉬는 공기나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나 별들이 거저 주어진 것처럼 여겨지나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단순하게 보이는 투표행위 역시 대가없이 권리가 생긴 것도 아니다. 수십억만 년 전의 우주팽창 때문에 태양이나 별들이 생성됐듯이 선거권 역시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모두 알다시피 인류의 역사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계속된 긴장과 피의 투쟁으로 얼룩져있다. 지배층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피지배층을 개·돼지 취급하며 착취해왔다. 때문에 대다수 피지배층을 제외한 소수의 지배자만이 끼리끼리 국가 의사를 결정 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행사하는 투표권이 성인 남녀 모두에게 주어진 때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못하다. 근대민주주의 선진국인 영국에서조차 1918년에 가서야 성인 남자에 한정하여 투표권이 주어졌다. 여성에 대한 투표권은 1928년에 가서야 주어졌다.

그것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피맺힌 희생의 산물이었다.

1913년 6월4일 영국 더비 경마장에서 에밀리 데이비슨이 “여성에게 참정권을!” 외치며 뛰어들었다. 말발굽에 치인 그녀는 나흘 뒤 숨을 거뒀다. 이 사건은 당시 영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한 지를 짐작케 한다.

프랑스 역시 영국과 사정이 비슷하다. 프랑스는 1944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우리가 흔히 풍요와 복지의 나라로 생각하기 쉬운 스위스조차 1971년이 되어서야 여성에 대한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 1964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연설하고 있는 말콤X
▲ 1964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연설하고 있는 말콤X

여성도 이러할진대 흑인들을 거론하면 투표권에 대한 인류의 역사는 더욱 비극이다. 흑인들이 투표권을 얻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53여 년 전이다. 1964년 4월 3일 말콤 엑스는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이렇게 외쳤다.

“투표권이 아니면 총알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듬해 그는 결국 백인 인종차별주의 '쿠 쿨럭스 클랜 KKKI' 비밀단체에 의해 죽었다. 분노한 흑인들의 참정권 요구에 대해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미국 정부는 마침내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이제 다음 달 9일은 우리의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그달 4~5일은 사전투표가 예정되어있다. 어쩌면 우리의 투표행위는 지극히 당연하고 하찮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거권과 투표권은 피지배층의 끊임없는 투쟁 산물이다. 한 표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되새기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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