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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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엽 전 공안탄압대책위 기획홍보위원장
▲ 이의엽 전 공안탄압대책위 기획홍보위원장

5.9 조기대선은 박근혜 탄핵 촛불혁명의 선물이다. 그러니 촛불혁명을 계승하는 촛불대선이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17일부터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촛불혁명의 요구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광장정치의 혁명적 열기는 식어버리고 야권 후보 간에 상호 비방과 네거티브 공격이 난무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기를 열망했던 촛불시민의 외침은 실종되고 오직 정치공학적인 합종연횡이 판을 치고 있다. 노동계에서도 대선 후보에 줄서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항쟁의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자. 1960년 4.19 혁명은 학생들의 주도로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당시 항쟁의 주역들은 그 이후의 선거나 정치의 변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였다.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다. 하나는 학생들이 스스로 정치세력화를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항쟁 이후 이승만 독재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과제는 제도권 야당의 역할로 이양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하나는 자연발생적이고 미조직된 항쟁 자체가 갖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는 요구로 출발한 학생 시위는 독재자 이승만의 퇴진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였으나 항쟁을 이끌어가는 지도부의 지도 없이 대중의 자발적인 분노와 저항으로 이룩한 성과였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퇴진하자 집권당인 자유당이 해산되었고 정국의 주도권은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민주당은 개헌과 총선을 거쳐서 권력을 장악하는데 몰두하였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4.19 당일 학생 시위대에 대한 발포 책임자 처벌 등의 대중적 요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선거를 통하여 장면의 민주당 내각이 들어섰으나 민주당은 혁명을 계승하고 완수하기에 너무나 무능한 집단이었다. 민주당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흘린 피의 수혜자로 정권을 차지했을 뿐 이승만의 자유당만큼이나 보수적인 정치세력이었다. 그나마 제2공화국 시절에 존재했던 개혁의 열망과 가능성은 5.16 군사쿠데타로 짓밟힘으로써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다.

1987년 6월항쟁은 어떠했는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호헌 조치에 맞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목표로 시작된 대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는 6월10일 절정에 이르렀다.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발표되자 정국은 급격하게 개헌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지 못하고 모든 법과 제도를 그대로 둔 채로 여야의 타협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자 보수언론이 사회 혼란 운운하면서 그 위험성을 강조하자 야당은 노동자의 투쟁을 외면하고 선거정치에 몰두하였다. 선거정치가 광장정치를 대체하였으며, 대통령 선거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12.16 치러진 대선에서 야권은 분열되었고 결국 박정희-전두환의 후계자인 노태우가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6.10항쟁으로 분출되었던 민주화의 꿈과 희망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구체적인 전개 양상은 달랐으나 결과를 놓고 보면 6.10항쟁 역시 4.19혁명의 전철을 반복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항쟁의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되는 교훈은 무엇인가. 시위는 대중의 직접행동을 통한 압력, 행동의 여론전이다. 그러므로 그 행동이 중단되거나 약화되면 위력과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조직된 사회운동이 아닌 대중의 자연발생적 시위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4.19 혁명이나 6월 항쟁은 대중의 직접행동을 통한 여론전으로 일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하였으나, 항쟁의 주체세력인 대중들을 직접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없었으므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제도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9년 동안 제도정치의 야당이 야당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촛불시민들에 의하여 광장정치의 장이 펼쳐졌고 촛불혁명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다. 그러나 탄핵 국면이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는 순간 선거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광장정치가 뒷전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제도정치와 광장정치가 분리되고 정국의 주도권은 광장정치에서 제도정치로 급격히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인 한국에서 대선 만큼 정치변화에 결정적인 계기는 없다. 그러나 촛불혁명의 요구와 이해관계는 선거로 다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혁명의 요구가 선거 과정에서 왜곡되어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제도적 장치인 선거는 촛불시민의 열망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겠지만, 노동자 농민의 삶이 선거를 통하여 바뀌기를 기대할 순 없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치세력화하지 않으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촛불혁명을 통하여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자각한 시민들이 스스로 광장정치를 조직된 힘으로 전환시켜야 할 과제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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