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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사관과 군왕' 이야기
김갑수 소설가  |  gnews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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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7  14: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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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갑수(소설가)

오늘의 잘못된 정치를 말할 때, “지금이 뭐 왕조시대도 아니고”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에는 왕조시대의 정치는 수준이 낮았다는 전제가 들어 있는데, 과연 그런 것일까?

우리가 알듯이 조선시대의 역사 기술은 사관(史官)이 맡아서 했다. 사관은 최고 권력자 군왕의 언행을 낱낱이 기록했다. 이를 위해 사관은 군왕을 속된 말로 해서 ‘밀착 마크’ 했다. 따라서 왕은 대체로 사관을 경원시했다.

1401년 태종 1년 4월 25일의 일이다. 왕이 보평전에 있는데 사관 홍여강이 뜰아래에 들어오니, 환관이 나서서 그를 부축하여 내보냈다. 그러자 왕이 도승지 박석명에게 일렀다.

“공무 중에 사관은 마땅히 있어야 하지만 이곳은 내가 편안히 쉬는 곳이니 사관이 반드시 들어올 것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태종은 공식 업무 장소인 정전에 사관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평상시 업무 장소인 편전에까지 사관이 ‘반드시 들어올 것이 없다’고 했다. 반드시 들어올 것이 없다, 이 말은 전면부정이 아니라 조건부정이다.

같은 문제가 3일 후에 다시 불거졌다. 왕이 편전에서 정사를 보고 있는데 사관 민인생이 들어오려고 하므로, 도승지 박석명이 말리면서, “어제 홍여강이 들어왔었는데, 주상께서 편전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인생은 왕의 전지(傳旨)를 듣지 못했다며 뜰로 들어왔다. 왕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사관이 어찌 들어왔는가?” 하니, 민인생이 대답하기를, “전일에 문하부에서 사관이 좌우에 입시하기를 청하여 윤허하시었습니다. 신이 그 때문에 들어왔습니다.”라고 하였다.

“편전에는 들어오지 말라.”
“비록 편전이라 하더라도, 대신이 일을 아뢰는 것과 경연에서 강론하는 것을 신 등이 만일 들어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갖추어 기록하겠습니까?”

이에 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내가 편안히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않는 것이 가하다. 물론 사필은 곧게 써야 한다.”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

태종은 편전에 들어오겠다는 사관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임금이 웃으면서 말했다’는 문구와, ‘사필은 곧게 써야 한다’는 태종의 추가 발언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왕은 자기의 말을 즉석에서 반박하는 사관에게 웃으면서 타일렀다. 그리고 앞에서는 사관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했으면서도 ‘사필은 곧게 써야 한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약간 모순이다.

이런 의문은 이로부터 약 2년 후인 1403년 3월 27일에 풀리게 된다. 태종은 이 날 부로 사관의 편전 입시를 허용하며 말한다.

“지난번에 두세 종친과 더불어 청화정에서 활을 쏘았는데, 간원(諫院)에서 상소하여 말하기를, ‘왕이 날마다 무신(武臣)과 더불어 과녁을 쏜다.’고 하였으니, 종친이 들으면 어찌 마음에 불쾌함이 없겠는가? 그렇게 되면 문무(文武) 사이에 혐의와 틈이 생길 것이다. 내가 이러한 뜻으로 인하여 사관의 입시를 일시 금한 것이다. 그것은 유생(儒生)을 무마하고 혐의와 틈을 방지하자는 것이었지, 사관을 꺼려서가 아니었다.”

다시 약 1년 후인 1404년 2월 8일의 사건이 참 흥미롭다.『태종실록』 4년 2월 8일 자에는 ‘임금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으나 사관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다’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리고는 왕이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져서 말에서 떨어졌다. 왕은 좌우를 돌아보며,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관은 말달리는 왕이 말에서 어떻게 떨어지는지를 지켜보았으며, 왕이 사후에 어떤 말을 했는지도 다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왕이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 것까지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 전에 태종은 ‘사필은 곧게 써야 한다’고 이른 적이 있었다. 이것은 수준이 낮기는커녕 조금 신비롭기까지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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