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칼럼] 법과 상식 <2>

재정신청제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형사소송법은 공소제기의 기본원칙으로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취하고 있다. 기소독점주의는 국가기관 중에서 검사만이 공소를 제기하고 수행할 권한을 갖는 것을 말하고, 기소편의주의는 수사결과 공소를 제기함에 충분한 혐의가 인정되고 소송조건을 갖춘 때에도 검사의 재량에 의한 불기소처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기소독점주의는 공소제기의 적정성을 보장함을 이념으로 하고, 기소편의주의에 의하여 형사사법의 탄력성 있는 운용을 통하여 구체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소독점주의로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사에게 공소제기에 대한 재량까지 부여하였을 때는 검사의 독선이나 자의를 허용하고, 또한 검사의 공소권행사에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게 하는 위험이 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로는 검찰청법상의 항고, 재항고 제도가 있으나 이는 검찰 조직 스스로에 의한 시정제도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따라서 검사의 부당한 불기소처분을 규제하기 위한 기소강제절차가 필요한데 이것이 형사소송법상 인정되고 있는 재정신청제도이다.

재정신청권자는 검사로부터 불기소처분의 통지를 받은 고소인이다. 형법 제 123조 내지 125조 공무원의 직권남용과 관계된 죄에 대해서는 고발인도 재정신청권자가 될 수 있다. 예외적으로 공직선거법은 후보자를 낸 당이나 선관위에 대하여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고발인에게도 재정신청권을 부여하고 있다.

지난 6월 민주당은 원세훈 국정원장, 이종명 국정원 제 3차장, 민병주 전심리전 단장 등을 포함한 국정원 직원들을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이를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전국정원장만을 공직선거법위반 및 국정원법위반으로 기소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기소유예하였고, 민주당이 서울고등법원에 기소유예된 사람들에 대하여 재정신청을 하였다.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은 민주당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위 두 사람에 대하여 공소제기명령을 한 것이다.

검찰은 상명하복이 강한 국정원의 특성상 국정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직급을 불문하고 원장의 지시에 따랐을 뿐인 것으로 판단하여 기소유예한 것이나, 법원은 국정원 차장이나 당해 부서의 단장은 단순히 원장의 지시를 이행하는 정도를 넘어서 몸통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아 처벌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원세훈 원장을 기소할 당시 수사팀 및 대검측과 법무부는 원세훈 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신청여부, 공직선거법위반혐의로 기소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법무부에서는 2주간이나 시간을 끌면서 수사팀은 사실상 수사를 손 놓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국 타협책으로 원세훈 전원장에 대하여 공직선거법 혐의를 적용하여 기소는 하되,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는 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국정원 일반 직원뿐만 아니라 상당히 높은 직급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국정원 3차장, 심리전 단장도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법원의 재정신청인용결정으로 검찰이 당연히 기소를 해야 할 사람들을 기소하지 않은 것이 확인됨으로써 특별수사팀의 수사조차도 국정원에 대해 상당한 배려 차원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결국 법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앞섰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사태는 더욱 가관이다.

법무부와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적용 여부 및 구속영장청구 문제로 갈등을 빚은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혼외자 의혹이 특정신문에 의해 대서특필되더니 혼외자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사상 초유의 법무부장관에 대한 검찰총장감찰실시가 지시되고, 그 결과 수사팀을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막아보려고 하던 검찰총장은 사퇴하고 말았다.

또 최근에는 수사팀을 이끌던 팀장이 국정원직원의 추가혐의를 발견하고 해당 국정원직원들을 체포하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무에서 배제명령을 받고 팀장에서 물러났다. 사후에 확인된 바로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도 말이다. 법대로 해보겠다고 하는 검사들이 모두 상부의 압력으로 물러난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검찰개혁은 공염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위 재정신청 결정에서 보듯이 국정원특별수사팀도 사실은 법무부의 압력에 굴복한 것인지 내부 결정에 의한 것이지는 알 수 없으나 당연히 기소해야할 제 3차장이나, 심리전단장을 기소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다.

즉, 당연히 기소를 해야 할 사안을 기소하지 않았다고 하여 법원으로부터 기소명령을 받은 것이니 원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특별수사팀검사들도 검사로서의 직무를 100% 제대로 수행한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외부의 압력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수사팀은 최소한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기소하는 선까지는 겨우 지킨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위반혐의를 적용한 그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 같다.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소위 ‘찍어내기’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유치하다. 시간이 과거로 흐르는 것 같다.

/김남준 법무법인 ‘시민’ 대표변호사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공무원U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기사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