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칼럼]

'빨간 우의'를 향한 음모설을 가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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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 토요일 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살 떨리는 심정으로 시청했다. 함께 시청하던 사람은 반복되는 잔인한 장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연신 ‘아이 무서워’하며 내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정말로 무서웠다. 눈이 퍼렇게 피멍이 든 채, 입에서 붉은 선혈을 흘리며 병원차로 옮겨지는 선생의 모습을 눈뜨고 보기 정말로 어려웠다. 살수차에 맞아 나뒹구는 허약한 인간들의 몸뚱이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슬픈 정황이다. 그렇다고 어찌 시선을 편히 돌릴 수 있겠는가? 두려움을 떨치고 악착같이 저 잔혹상을 지켜봐야 한다. 현장을 똑똑히 목격하는 건 대신 살아남은 자가 짊어질 최소한의 책무다. 눈물이 나도, 분노가 치밀어도, 환멸이 들어도, 그래도 우리의 시선은 저 저널리즘이 담은 현실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폭력의 현장을 복구하는 저 집요한 카메라의 눈을 따라잡아야 한다.

공영방송이 실패한 자리를 그래도 미디어공공성의 공통가치로서 악착같이 지켜내려는 SBS 피디저널리즘이 이룬 또 한 번의 고마운 성과다. 참 잘 만들었다. ‘살수차 9호의 미스테리’ 편은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체제의 가당찮은 음모를, 국가의 거짓된 의혹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현장에서 악착같이 찍어낸 다양한 영상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한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경찰 살수차가 인간은 가까이에서 감당할 수 없는 파괴력으로 백남기 선생을 타격해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쳤다는 진실을 폭로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영상은 이 폭력적 신체가격의 상황에 뛰어들어 약자를 구하고자 한, 그러다가 막강한 물대포에 밀려 선생에게 엎어진, 우의 입은 인간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동작을 보여준다. 입체적 조망이 가격의 실상, 고 백남기 선생 폭행의 진상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가격(加擊). 주먹이나 몽둥이, 무기를 이용해 무엇을, 누군가를 때리고 치는 물리력 행사의 행위를 가리킨다. 상대에게 의도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일, 간단하게 말해, 폭력이다. 우리는 그런 가격, 타격을 두려워한다. 공포의 가격, 타격의 공포. 어린 시절부터 가져왔던 것이다. 큰 힘으로부터의 타격을 생명체인 우리는 쉽게 감당하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외부로부터 가해진 상당한 폭력은,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상해는 물론이고 심지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하니 타자를 함부로 가격하지 말라. 무엇보다, 강자는 약자를 절대로 폭행하지 말라. 우리는 이를 대화와 상생, 평화를 지향하는 인간사회, 민주국가의 윤리적 정언으로 취하며, 그 설정된 잣대 위반의 행동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반성한다.

▲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사진 = 김상호 기자
▲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사진 = 김상호 기자

저들이 내놓은 ‘가격설’의 요지는 이러했다. 빨간 우의를 입은 어떤 건장한 사내가 갑자기 출현해 쓰러진 한 노인을 고의로 가격했다. 작년 민중총궐기 때의 일이었으며, 피해자는 고 백남기 선생이었다. 그것이 영상으로 찍혔다. ‘일베’가 이 충격적이고 으스스한 담론유포의 진원지였다. 아스팔트 위에 나가떨어진 무방비의 백씨를 일부러 쫒아가 덮치고 때린 빨간 우의 입은 남성의 엽기적 행적. 상상만 해도 섬뜩하고 오싹하다. 단방에 그는 수상한 자, 나쁜 놈, 백씨 죽음의 책임자로 지목된다. ‘시체 팔이’ 한다는, 죽음을 선동한다는, 뒤에서 자살을 유발한 오랜 역사가 있다는 좌파의 악마성을 고발하는 도덕적 비난과 접속한다. 인터넷의 헛된 소리가 아니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버젓이 여당 의원들이 진지하게 재생하는 이야기다. 음모론이다.

백남기 선생이 생명 위협의 중태상태에 빠진 것은 국가폭력 때문이 아니지요? 직사 물대포는 가해의 원인이 아니어요. 불쑥 현장에 끼어든 바로 저 수상쩍은 빨간 우의 입은 사내를 잡아라! 저 놈이 가해자다. 저 자가 범인이다! 가해는 저 빨간 우의 입은 사내가 한 게 틀림없다! 빨간 옷을 입은 한 사람이 쓰러져있는 백씨에게 주먹질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이 있지 않은가? ‘빨간 우의’를 쫒는 이 의혹의 음모설은 과감하게 도약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철저한 수사가 필요해. 경찰은 뭐 하는가? 요즘 한참 활약이 많은 새누리당 의원 김진태의 발언이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현장이, 우리의 기억도 이 담합된 가격설의 음모에 의해 엽기적으로 전도, 왜곡되는 듯 했다.

경찰이 재빨리 움직인다. 백남기 선생이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이후, 그의 죽음에 대해 서울대병원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병사’라 황당하게 정리한 직후, 경찰은 부검영장 발부를 위해 이렇게 소명할 것이다. “살수차에 의한 것인지 빨간 우의 남성에 의한 것인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부분”이 있어 ‘과학적’인 부검이 필요하다. 인터넷 우익의 의혹과 보수 정치인들의 질의, 국가 공권력이자 폭력 당사자인 경찰의 답변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의혹의 발설이 뒤섞여 ‘빨간 우의 가격설’을 축조하며, ‘빨간 우의’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이 음모론이 인터넷과 거리에서 조직적으로 유포된다. 보수단체들이 조응해 ‘빨간 우의’를 경찰에 수사 의뢰한다. ‘빨간 우의’가 “세간의 의혹처럼 고의적 테러를 통해 백씨를 사망에 이르도록 하였는지 최선을 다해 수사해 진실을 밝혀 달라.”

‘테러’라는 말까지 나왔다. ‘빨간 우위’로 지목된 시민성 자체를 향한 일방 가격이 계속된다. 그놈이 그를 죽였어. 네가 그를 죽였단 말이야! 너는 테러범이야! 1년 동안 지명 수배되다시피 한 ‘빨간 우의’가 마침내 마이크 앞에 섰다. 악의적인 가격설에 시달렸던  피해자다. 바로 나일 수 있는, 고의적인 음모론에 의해 큰 고통을 겪었을 게 틀림없는 약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기에 앞서 일개 시민일 뿐인, 오직 불의를 고발하고 정의를 보호하기 위해 거리에 나갔을 한 사내다. 이씨가 될 수 있고, 전가일 수도 있는 손씨라는 성을 지닌 인간이다. 대체 왜 그가 저런 엄청난 누명을 덮어써야 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고 백남기씨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감추기 위해서였고 최순실 사태로 폭발한 정권의 총체적 비리와 무능을 호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손씨는 이렇게 또박또박 진상을 증언했다. 경찰이 물대포를 직사했고, 백남기씨가 쓰러졌다. 직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백씨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 위해 나는 그에게 달려갔다. 쏟아지는 경찰의 직사 물대포를 등으로 막으려 했지만, 등으로 쏟아지는 물대포는 성인인 그마저 순식간에 쓰러트릴 정도로 강력했다. 결국 나는 넘어졌고, 그 와중에도 나는 양손으로 겨우 아스팔트를 짚었다. 그뿐이다. 맞다. 그게 사실이고 그게 진실이었다. ‘빨간 우의’ 손씨는 그가 반드시 짊어지지 않아도 될 사실과 진실을 말할 책임을 고통스럽게 인간적으로 짊어졌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무서운 음모론이 조직적으로 만들어질 때, 더 이상 이를 방조할 수는 없다는 단호한 인간적인 결기를 갖고 카메라 앞에 섰다. 민중총궐기 현장에 서고자 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다.

주말의 <그것이 알고싶다>가 그에게 신뢰를 보낸다. 그에게 덧씌워진 억울한 모함을 시원히 벗겨준다. <그․알>은 고 백남기 선생을 가격한 살수 공권력의 파괴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이 진실의 저널리즘은 ‘빨간 우의’에게 덧씌워진 너무나 폭력적인 음모론을 사실로써 폭로한다. 그가 가격한 게 아니다. 고 백남기 선생의 가격은 인간 신체가 아닌 기계화한 국가 몸체에 의해 이루어졌다. 경찰과 국가 폭력에 살해의 책임이 있다. “너무 엉터리라 굳이 대응해 국가폭력 살인이라는 초점을 흐리기 바라지 않아 침묵했지만 국회의원과 보수언론들이 상황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져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는 한 평범한 시민의 진술을 <그․알>은 진실이라 손 들어주었다. 게임은 끝났다. 통쾌한 음모의 실패고, 멋진 진실의 한판 승리다. ‘빨간 우의’ 가격설이라는 악의적인 음모론에 기댄 부검은 안 된다. 인정하고 시인하며 자백하는 것 외에 없다. 경찰이, 정권이, 국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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