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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인 해직기자에게 보내는 응원[전규찬 칼럼]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gnews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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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23  10: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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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새벽입니다. 종점을 출발하는 지하철은 아직 많이 한산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이른 시간 또 어디론가 다시 떠나고 있습니다. 약간의 여유를 두고,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되나봅니다. 반복적일지라도 틀림없이 미묘한 차이를 지닌, 그래서 늘 새로운 일상입니다. 대각선 쪽에 한 젊은 부부가 앉아 있습니다. 시종일관 아무 말 없이 노선표만 올려다보고 있군요. 그래도 참 서로 믿음이 많은 커플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찰싹 붙은 저들의 몸에서 희한하지만 그런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 옆 젊은 두 여성들은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뭔 그리 재미난 이야기가 있는지, 이 새벽부터 수다입니다. 저 청년들의 대화는 내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강한 생기, 매력적인 삶의 에너지를 확확 내뿜습니다.

다음 정거장, 건장한 남성이 차에 올라탑니다. 잘 생겼습니다. 더욱 매력적인 건, 앉자마자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는 겁니다. 제목이 뭘까 궁금해 슬쩍 훔쳐봅니다. 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재미난 소설 <웃음>이군요. 역경을 헤치며 웃음 산업을 둘러싼 음모를 파고드는 두 기자에 관한 이야기였던가요? 가을 새벽길의 책 읽는 남자. 잘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어여쁜 와이프가 깨끗이 씻어주었을 사과도 꺼내 꽉 베물어 먹는군요. 아싹아싹. 괜히 저한테까지 싱그러운 과일 맛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입안에 잔뜩 침이 고입니다. 주책이지요? 아, 어떡하겠습니까. 이런 게 모두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의 살아있는 풍경들인데, 어찌 이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이상하게 이런 것 하나하나가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군요. 저런 별것 아닌 것들이 결국은 삶을 꾸미는 디테일한 표정들이기 때문일까요? 저런 것이 누구에게는 참 귀한 일상의 중요한 사건들인 까닭일까요? 참 평범한 우리의 생활입니다. 평범하지만 참 소소한 재미가 큰 우리의 삶입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자꾸 엉뚱한 데서 맴돕니다. 제 글이 지금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선 건 아니었습니다. 사무실에 새로 설치한 새 에스프레소 기계로 쓴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면서, 집 냉장고에서 꺼내 온 찬 팥빵을 씹으면서, 학교 앞 슈퍼에서 850원 주고 산 흰 우유를 들이키면서 말하려 했던 것은 결코 이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컴퓨터 자판 위의 제 손가락은 자꾸 다른 낱말을 치고 있습니다. 할 이야기를 못하고 저는 이렇듯 계속 머뭇거립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여전히 망설여집니다. 사실은 이랬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암에 걸렸다는 한 친구에 관해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왔습니다. 며칠 전 한 일간지에 실린 칼럼을 보고 먹은 마음입니다. <한겨레>의 김종구 논설위원이 암 판정을 받은 후배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자각증상 없이 암세포 전이가 많이 되어버리기에 수술이 쉽지 않은 복막암에 걸린 고등학교 후배의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칼럼이 나간 뒤 김 위원은 자신이 페이지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칼럼으로 그의 암 투병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만나 어렵게 동의를 얻어냈다. 월요일 오후 늦게 그에게 문자가 왔다. ‘형, 칼럼이 내일자에 실리나요?’ 그렇다고 하니 곧바로 다른 문자메시지가 왔다. ‘이제 어머니한테 말씀드려야겠네요.’ 아직 암에 걸린 사실을 어머님한테 알리지도 못한 상태였구나. ‘언제 말해야 하나 고민했죠.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면 충격 받으시니까 미리 고하러 가야겠네요.’ 그 문자를 받고 나니 더욱 큰 슬픔이 밀려온다.

그렇습니다. 엠비씨의 이용마,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엠비씨에서 해고된 이용마 기자의 이야기입니다. 쉰이 채 안 된, 초등학교를 다니는 쌍둥이 아들과 자신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 부인을 둔 한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이 평범한 사내에게, 오직 정의의 길을 택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 아빠와 함께 삶을 꾸린 저 가족들에게 날벼락 같은 병고가 들이닥친 겁니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박사 아들, 애틋하고 애처로운 해고자 자식을 매일 같이 눈물로 떠올렸을 어머니의 또 다시 찢어지는 심경이 느껴집니다. 어찌 이를 ‘불운’, ‘애틋한 사정’, ‘안타까운 심정’ 따위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에, 저 또한 차마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던 겁니다.

   
▲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그의 병을 '개인의 불행'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용마 기자는 2012년 공정보도를 요구하며 MBC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해고됐다. 사진 =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용마. 우리와 함께 공영방송, 공정언론을 위해 투쟁한 동지입니다.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언론인으로서 부정한 권력에 맞선 그를 회사는 무참한 해고로 대응했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동료들과 함께 온갖 지루한 소송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꿋꿋이 복직을 위한 법정투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4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다행히도, 법원은 해고가 부당하다, 방송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하다고 연달아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허나 저 무덕한 사측은 까딱도 하지 않습니다. 집요하게 이들의 복직을 거부합니다. 악착같이 대법원으로 끌고 갑니다. 사람을 정말로 질리게 합니다.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들려는 모양입니다. 아, 진짜로 사람을 죽일 심산인걸까요?

노동자들을 무단으로 해고하고 그래서 가정의 안전을 무참히 파괴해 버리며 결국은 인간의 목숨마저 박탈하는 이 땅의 비정하고 잔혹한 자본, 국가입니다. 우직 무늬만 공영방송인, 실상은 국정방송에 불과한 MBC가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건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용마는 그 정확한 사례, 희생자 케이스일 뿐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부정한 시대에 대한 분노가, 부당한 권력에 대한 환멸이 그의 몸속에 암 덩어리를 싹틔운 게 틀림없습니다. 저 사내와 같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또 저 인간처럼 비통한 심경을 가졌을 어느 누구의 몸속에라도 무서운 암세포는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피와 살을 가진 약한 존재라면 다 그러하지 않을까요?

이 나라 국가권력이 정상이고, 민주주의가 정상이며, 공영방송이 정상이고, 또한 MBC가 정상이었다면, 그래서 정상의 저널리즘이 가능했고, 언론인 이용마가 정상적으로 출근해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있었더라면, 그러면서 가족들과는 행복하고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었더라면, 자신의 건강을 알아서 잘 챙길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이 무서운 질병은 분명 이용마 기자를 슬쩍 피해갔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라도 국가권력이 비정상이고 민주주의가 비정상이며 그래서 비정상이라 외치다 해직되어 생활이 파괴되고 가정이 불안해진다면 당연히 제 몸과 마음까지 따라서 비정상적으로 피폐해질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암 발병은 결코 그의 탓이 아닙니다. 대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문을 열며 누군가 들어옵니다. 아, 아침마다 건물을, 연구실을 깨끗이 해주시는 청소노동자 아주머니이십니다. 돌아보니, 창밖은 이제 무척 밝습니다. 가을 햇살이 짙은 녹색의 숲 위로 비스듬히 깔렸습니다. 오늘 하루도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겠죠. 여러분도 그러하시죠? 그러시더라도 부디 병상에 있는 우리의 동지, 이용마라는 인간을 한번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힘내라, 힘내자 따뜻한 감사와 용기의 말씀을 주변 동료들과 뜨겁게 주고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실 이용마 기자를 많이는 알지 못합니다. 함께 미디어운동장에 있으며 가끔 만나고, 한번은 토론장에서 아주 세게 맞붙어 언성을 높인 적이 있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끝맺고 싶습니다. 이용마, 사랑해.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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